넥센은 올해 ‘가을 야구’에서 패자로 남았지만 야구 팬들의 뇌리 속에 평생 남을 명경기를 선보였다. 누가 봐도 끝났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거짓말 같은 한방이 터졌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국가대표 4번 타자 박병호(32)였다. SK와 플레이오프 내내 침묵을 지켰던 그가 마지막 5차전에서 7-9로 추격한 9회초 2사 후 극적인 동점 2점포를 터뜨렸다. 패배를 예감했던 동료들과 구단 프런트, 팬들은 그 순간 간판 타자의 한방에 눈물을 쏟았다.
박병호는 20일이 지났음에도 그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22일 통화에서 그는 “미국 생활을 마치고 금의환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번도 ‘잘 돌아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그래도 올해 보여준 모습이면 히어로즈 팬들은 잘 돌아왔구나라고 생각해주지 않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왔고, 시즌 중 부상으로 쉬었던 데다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던 점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극적인 홈런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어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박병호는 “많은 분들이 우는 것을 봤지만 스스로에겐 감동을 주는 홈런은 아니었다”면서 “이겨야 홈런도 의미가 있는데, 결국 졌다. 그 전에 빨리 홈런을 치든지,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을 야구를 하는 동안 내색은 안 했지만 (부진에 따른 안 좋은) 시선을 의식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해질 수 있었던 홈런이었다”고 덧붙였다.
2015시즌을 마친 뒤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홈런왕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던졌던 박병호는 2년간 미네소타에서 뛰었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국내로 유턴했다. 복귀 첫해 113경기에 나가 타율 0.345 43홈런 112타점을 올렸고, 장타율(0.718)과 출루율(0.457)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시즌 초반 종아리 근육과 아킬레스건 부상 탓에 한 달 넘게 자리를 비우고도 홈런 1위 김재환(두산ㆍ44개)과 차이는 1개에 불과했다. 지난해 7위로 가을 야구 티켓을 놓쳤던 팀 역시 그의 복귀와 함께 4위를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박병호는 “복귀한 첫 시즌이라 걱정도 있었지만 팀에 금방 적응했고, 새로운 코칭스태프, 동료들과 함께 하며 많은 정을 느꼈다”며 “개인적으로는 부상으로 빠진 게 아쉽고, 팀에도 미안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팀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마친 것”이라고 했고 가장 만족한 개인 성적은 “중심타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인 장타율”이라고 답했다. 그는 부상으로 빠진 기간이 있었기에 홈런 타이틀을 놓친 건 아쉽지 않다고 했다.
19일 정규시즌 시상식에서 내년 전 경기 출전을 목표로 잡은 이유에 대해선 “홈런 몇 개를 목표로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일단 경기를 많이 나가야 기록도 따라온다. 전 경기를 뛰기 위해 스스로 준비를 잘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답했다. 20일부터 개인 운동을 시작한 그는 “올해처럼 오랜 시간 부상으로 빠진 적이 없었다.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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