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너도나도 뛰어들어
국립공원 등 자연 파괴 심각
정부, 급습해 금만 빼앗고 방관
남미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가 현지인들을 불법 금 채굴 현장으로 내몰고 있다.생존 차원의 무허가 금광 개발 상당수가 국제사회가 지정한 자연보호 지역에서 이뤄져 그에 따른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채굴이 금지된 국립공원까지 포함해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금 채굴이 이뤄지고 있다.대표 사례는 남동부 볼리바주의 카나이마 국립공원 인근 카마라타 지역이다. 이곳 주민들은 지난 9월 금을 채취하기 위해 축구장 크기 2배가 넘는 규모의 웅덩이를 팠다.지역 주민들은 너도나도 금 채굴에 뛰어들었다.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카를로스 아바티는 WSJ에 “이전에는 부모들이 관광 가이드를시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언어 수업을 듣게 했다면 지금은 곧장 광산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살인적 물가 상승으로 베네수엘라의 법정 화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금 채굴에 뛰어들었다.생필품을 구하려면 화폐를 대체할 게 필요해졌기 때문이다.이 곳에서 밀가루 1㎏과 브라질산 식용유는 각각 금 0.40g,쌀 1㎏은 0.38g에 거래되고 있다.
골드러시 현상으로 생태계는 크게 훼손됐다.베네수엘라 생태학자 모임인 ‘SOS 오리노코’는 위성사진을 통해 카나이마 국립공원에 30개 이상의 광산이 개발된 것을 확인했다.카나이마 국립공원은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업’의 배경으로 사용됐을 정도로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199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카마라타에 사는 아브라한 산도발은 “자연 지킴이 역할을 했던 원주민들이 어려운 경제 여건 탓에 자연 파괴자가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금광 개발은 타국 무장단체까지 끌어들여 희생자를 양산시키기도했다.지난달 금 채굴을 둘러싼 다툼으로 이 지역 광부 17명이 목숨을 잃었다.이달 초에는 콜롬비아 반군인 인민해방군 소속 군인 3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공원 인근에 군인들을 배치했지만 불법 금 채굴 단속에는 적극적이지 않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채굴 현장을 급습해 주기적으로 금을 압수해 이익을 챙기고 있기 때문에 애당초 금 채굴을 막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야당의 아메리코 드 그라지아 의원은 “군대는 사실상 이 산업의 최대 수혜자”라고 말했다.
정부의 단속 의지 부족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원유 수출 수입 감소로 망가진 국가 경제를 금 산업으로 회생시킬 전략을 짜고 있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연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보유 중인 금을 담보로 발행한)유가증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런 이유로 미 백악관은 지난 1일 베네수엘라와 금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제재를 부과했다.
경제가 극적으로 살아나지 않는 이상 골드러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은 미국의 추가 제재로 더욱 악화할 수 있다.미국 백악관은 금 거래 금지 제재 이후 베네수엘라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추가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