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집에서 만난 SK 가을영웅 둘
“박정권 만세, 김강민 만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최창원 구단주는 한국시리즈 통산 네 번째 우승 축승회 자리에서 단상에 올라 박정권(37)과 김강민(36)의 이름을 언급하며 ‘만세’를 외쳤다. 2000년대 후반 SK 왕조를 이끈 주역들이 옛 추억을 떠올리는 활약으로 2010년 이후 8년 만의 우승을 견인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정규시즌 2위 SK는 무려 14.5경기 차로 뒤졌던 1위 두산을 한국시리즈에서 극적으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우승에 여운은 길었다. 최근 인천 송도의 한 삼겹살집에서 만난 박정권은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좋아했던 8년 전과 이번 우승은 다른 기분”이라며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옛날 기억까지 다시 떠올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함께 동석한 김강민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자꾸 ‘우리 우승한 거 맞아? 진짜야?’라고 묻고 다녔다”면서 “과거엔 우승한 다음 날 곧바로 아시아 시리즈(한국과 일본, 대만 우승 팀이 격돌하는 대회)를 준비하고, 대회가 끝나면 마무리 캠프를 갔기 때문에 기쁨도 하루 만에 끝났지만 이번엔 한국시리즈로 모든 일정이 끝나 감격도 더 오래간다”며 웃었다.
올해 정규시즌 동안 주전 경쟁에서 밀려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둘은 포스트시즌에서 통쾌한 반전을 일으켰다. 2007년과 2008년, 2010년 우승을 경험한 ‘가을 DNA’가 결정적인 순간 돋보였다. 플레이오프 1차전 9회말 끝내기 홈런, 한국시리즈 1차전 결승 홈런을 치며 팀에 유리한 확률을 안긴 박정권은 “그거라도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하는 등 포스트시즌 내내 쾌조의 컨디션을 뽐낸 김강민은 “기가 막히게 포스트시즌에 컨디션이 맞춰졌다”면서 “트레이 힐만 감독님이 ‘이게 다 하늘이 장난 치는 거다. 시즌 시작할 때부터 계속 뛰었으면 포스트시즌 때 체력이 떨어지지 않았을까’라는 말도 했다”고 웃었다.
또한 구단주가 만세를 부른 것에 대해 박정권은 “(김)강민이가 워낙 잘해줘 같은 고참으로 묻혀가는 것도 없지 않았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에 김강민은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은 경기 안에서 펼쳐지는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없는데, (박)정권이 형이 상황마다 흐름을 잘 짚어줬다”고 공을 돌렸다.
김강민은 “2000년대 후반 팀에 좋은 외야수가 많아 빠질 때도 있었는데, 뛰는 선수보다 벤치에서 지켜보는 게 더 긴장되고 죽을 맛이더라. 안 나간다고 안 힘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SK 왕조 시절 붙박이 1루수였다가 올해는 지명타자 또는 대타로 나섰던 박정권은 “나가서 뛰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며 “벤치에서 몰입하다 보니 온 몸이 경직되고, 나중엔 담까지 왔다”고 털어놨다.
어느덧 가을의 대명사가 된 박정권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권이 내’라는 문구가 유행했다. 김강민은 “경기장에서 플래카드도 봤다”면서 “근데 그게 무슨 뜻이지?”라며 박정권을 쳐다봤다. 박정권은 “주위에서 계속 알려주니까 들은 건데, ’대타를 쓰라’는 의미”라며 “시리즈 내내 삼진도 많이 먹고 하니까 ‘정권이 빼’라는 말도 나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둘이 합쳐 8개의 우승반지를 낀 이들은 다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다. 디펜딩 챔피언이 된 SK는 염경엽 신임 감독 체제에서 디펜딩 챔피언으로 내년 시즌을 맞는다. 박정권은 “다음 시즌 역시 죽기살기로 하는 방법 밖에 없다”며 “어떤 난관이 와도 올해처럼 버티고 또 버티겠다”고 했다. 김강민은 “1군 선수로 자리잡은 뒤 매년 당연히 1군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당연한 게 아니고 다 이유가 있었다”면서 “큰 교훈을 얻은 한 해였던 만큼, 다시 제대로 준비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인천=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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