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담 대학들 수업 줄이기 등
구조조정에 시간강사 계약 불투명
“대학 눈밖에 나면 생계가 어려운 상황인데 대놓고 휴강을 할 수가 있겠어요?” 대학구조조정 저지와 대학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시간강사의 ‘총휴업’을 선언한 21일. ‘휴업에 동참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시간강사 A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2년째 출강 중인 대학은 일명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이 유력해지자 ‘내년엔 강의를 못 줄 수도 있다’는 경고성 연락을 했다고 한다. 공대위가 이날 소속 강사 1,800여명에 휴업을 요청한 것도 이 같은 대학의 구조조정 시도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지만, 정작 “휴강하겠다”고 나선 강사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매 학기마다 ‘봇짐장수’처럼 강의를 찾아 전전하는 시간강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강사법이 입법 추진 8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15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만 통과하면 내년부터 현장에 적용되지만 시간강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를 올려줄 경우 늘어날 재정부담을 이유로 대학들이 내년 시간강사의 수업을 줄일 태세이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강사를 1년 이상 임용하되 최소 3년간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기로 했고, 방학 중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은 물론 교원소청심사 청구권 등 신분보장 장치까지 마련했다. 법안 내용은 물론 당사자간 합의의 측면에서 가장 진전된 안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후폭풍이 거세다. 벌써부터 시간강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가시화하고 있다. 중앙대는 1,200명인 강사 수를 내년 1학기까지 500명으로 감축한다는 계획이고, 고려대는 개설과목 수를 현행보다 20% 줄이기로 했다. 건국대는 기존 강의전담 강사 600명 중 300명만 채용해 한 사람에게 두 사람분의 강의를 맡기기로 하는 등 이미 상당수의 대학이 구체적 계획을 논의 중이다.
대학들은 법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지속적인 등록금 동결 등으로 어려워진 재정에 부담이 더해져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단국대 관계자는 “강사 전원 고용을 보장하려면 예산이 50억~70억원은 필요한데 당장은 현실적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사립대총장협의회 역시 9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 “강사법 실행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려면 시행 유보 및 강사 인건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교수들 역시 내년에 닥칠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 한 사립대 교수는 “유학간 제자에게 ‘한국에 자리를 잡지 못할 수 있으니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전했다”며 “대학이 정교수와 일부 강사에 여러 강의를 몰아주면 학문후속세대가 경력을 쌓기도 힘들고 기존 학자들의 연구시간도 줄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취임 후 “강사법 정착 예산을 책임지고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립대 강사 인건비를 지원하는 ‘시간강사 강의역량강화 지원사업’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고등교육예산 전반을 늘려 부담을 덜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방안 마련은 요원하다. 임순광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대학이 강사법을 따르도록 교육부가 하루빨리 유인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구조조정으로 노동권ㆍ학습권을 침해하려는 대학에 대해서는 12월까지 집단행동으로 항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