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더 레코드] <1> 육상 김국영
육상 마니아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00m 달리기를 두고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결정되다니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100m 10초 이내 주파는 단거리 선수에겐 절대 목표이자, 러너인생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국제육상연맹(IAAF)이 기록 공인을 시작한 1912년 이후 남자 100m에서 10초의 벽을 깨진 건 1968년 10월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미국 육상 전설 짐 하인스(70ㆍ미국)가 9초9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면서다. 그로부터 15년간 깨지지 않던 세계기록은 1983년 미국의 캘빈 스미스(9초93)가 허문 뒤 꾸준히 단축됐다.
중국과 일본도 9초대를 깼다. 중국은 쑤빙톈(29)이 2015년 미국 유진에서 9초99를 달려 동양인 최초 마의 10초 벽을 깼다. 일본은 지난해 9월 기류 요시히데(22)가 9초98을 세워 처음 9초대 기록을 냈다. 쑤빙톈은 지난 6월 스페인에서 열린 IAAF 월드챌린지 결승에서 9초91의 순수 동양인 최고 기록을 냈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9초92의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무대에서 10초 벽이 허물어진 지 정확히 50년이 지난 2018년 한국 남자육상 100m 최고기록은 여전히 10초대에 머물러있다. 100m 육상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간을 가르는 무대로 ‘올림픽의 백미(白眉) 또는 ‘육상의 꽃’으로 불리지만, 한국 육상은 여전히 얇은 선수층, 턱없이 부족한 지원 속에 척박한 트랙을 내달리고 있다.
이처럼 기초종목에 대한 냉대와 무관심에 익숙한 한국 육상에 김국영(27ㆍ광주광역시청)은 한줄기 빛이다. ‘내 기록이 빨라지면 대한민국 기록도 빨라진다’는 신념아래 자신이 세운 한국신기록을 5차례나 스스로 갈아치우며 9초대 진입에 차근히 다가서고 있다. 지난 2010년 대구스타디움서 열린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100m 예선에서 10초31의 기록으로 이 때까지 31년간 잠자던 서말구(사망)의 기록(10초34)을 0.03초 앞당긴 그는 이후 한국신기록 ‘셀프 경신’을 이어갔다. 첫 한국신기록을 세운 지 한 시간 반 뒤 열린 준결승에서 10초23을 기록했고,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10초16으로 자신의 3번째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2년이 흐른 지난해 코리아오픈국제육상경기대회 일반부 예선에서 10초13(4번째 한국신기록)을 찍은 그는 결선에서 10초07(5번째 한국신기록)로 자신이 꿈꿔 온 9초대 진입에 성큼 다가섰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의 훈련장에서 만난 김국영은 “한국기록을 바꿔오는 과정에선 강도 높은 훈련만큼이나 힐난을 이겨내는 것도 어려웠다”고 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국기록을 바꿔갔지만, 때마다 육상계 일각에선 ‘얻어걸린 기록’이라고 수근 대며 그를 흔들었다고 한다. 특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노메달과 전국체육대회 100m 2위로 부진했던 올해엔 ‘기록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짙었다.
그럼에도 김국영은 “그런 비난과 우려도 날 키운 자극제였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험담에 휘둘리는 순간 선수인생은 끝난다는 심경으로 달려왔다”며 “하루빨리 올해의 부진을 잊고 9초대 진입의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
1차 도전 무대를 내년 9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로 설정한 그의 기록 단축을 위해 심태용 광주광역시청 감독은 이번 겨울 미국 전지훈련을 추진 중이다. 심감독은 “가능한 빨리 김국영을 미국에 보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 중”이라고 했다. 9초대 진입을 위해선 지금까지의 훈련강도와 방식에서 한 단계 올라서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김국영은 “한국의 겨울철은 기록단축보다 컨디션 유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며 “미국에 가게 된다면 계절 따뜻한 기후에서 한 수 위 선수들과 꾸준히 겨룰 수 있어 기록 단축엔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시아 정상급 전력을 갖춘 일본은 이미 몇 해 전부터 동계전지훈련으로 꾸준한 기록관리를 해 왔다는 게 김국영과 심감독 얘기다.
김국영은 당장의 기록단축뿐만 아니라 한국 육상의 미래를 위해선 육상트랙 개선 또한 절실하다고 힘줘 말했다. 2000년대 이후 국제 무대에선 반발력과 탄성이 좋아 ‘기록제조기’로 불리는 몬도트랙이 보편화됐는데, 국내에선 아직 1990년대까지 주로 쓰인 폴리우레탄트랙이 훨씬 더 많단다. 그만큼 국내 대회 기록단축과 세계무대 적응이 상대적으로 더딜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끝으로 그는 “2020 도쿄올림픽 우승에 목표를 두고 중장기 육성 프로젝트를 펼쳐 온 일본처럼 우리도 보다 체계적인 육성 프로그램이 갖춰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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