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이런 큰 사랑을 받기에 그릇이 작은 사람인 것 같아요.”
의외였다. 예능 속에서, 작품 속에서 보여줬던 이시언의 가볍고 능청스러운 모습이 익숙해서였을까 ‘대배우’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대답이 낯설게 느껴졌다.
2016년 tvN ‘응답하라 1997’에 출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이시언은 같은 해 함께 출연하기 시작한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양한 작품과 예능을 넘나들며 쉼 없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의 활약은 가히 ‘전성기’라 부를 만하다.
지금 이 시기를 즐기며 대배우의 맛(?)에 취해있지 않을까란 예상과 달리 이시언은 이 같은 사랑에 대해 “제 그릇이 작은 것 같다”며 예상 밖의 진중한 대답을 꺼냈다.
“많은 분들이 너무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도 드는 것 같아요. 예전처럼 지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고, 그렇다고 잘 됐다는 이유로 다르게 행동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아서... 그 중립을 지키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지만 아직 그런 사랑을 받기에는 제 그릇이 조금 작은 것 같아요.(웃음) 어느 날 제 스스로 ‘나는 잘 살고 있냐’는 질문을 던져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팬 분들의 사랑에 잘 보답하고 있는지,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아직 더 배워야 할 게 많은 것 같아요.”
생각보다 차분하고 깊은 그의 대답에 “예상과는 다소 다른 성격인 것 같다”는 말이 이어지자 이서언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조금씩 차분해지는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제가 드라마 속 캐릭터와 비슷한 것 같진 않아요. 평소 성격은 낯을 많이 가리기도 하고, 수줍음도 많은 편이거든요. 남들 앞에 잘 나서지도 못하고요. 그래서 다른 분들은 상상했던 이미지와 다르니 ‘이 사람이 기분이 나쁜가?’하고 오해를 많이 하시기도 해요. 그렇다고 마냥 차분한 성격은 아니지만, 방송보다는 차분한 편인 것 같아요.”
지난 11일 종영한 OCN ‘플레이어’에서 천재 해커 임병민 역으로 분해 특유의 생활 연기로 제 몫을 톡톡히 해 낸 이시언. 멤버들의 칭찬을 쉼 없이 늘어놓던 그는 작품의 흥행에 대한 이야기에는 “제 공은 100 중 5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올 한 해 ‘투깝스’부터 ‘라이브’ ‘플레이어’까지 다작 요정다운 행보를 보였던 이시언이기에, 자연스레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양한 시놉시스 중 차기작을 골라 출연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시언은 “아직 시놉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이브’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그 작품은 인터넷을 통해서 쟁쟁한 배우 분들이 캐스팅 됐다는 이야기를 접했었어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마자 한 신만 나와도 좋으니 너무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그런데 마침 노희경 작가님이 ‘나 혼자 산다’를 보시고 저에게 역할을 제안해 주셨었죠. 평소 제 연기하는 톤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지만, ‘나 혼자 산다’ 속 멍하니 TV를 보는 제 실제 모습이 캐릭터와 닮아있다는 이유에서였어요.(웃음) 그처럼 작품이 많이 들어와서 고르고 출연했던 게 아니라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출연할 수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많은 작품 중에 제가 고른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가 꾸준히 보여줬던 이미지들 때문인지, 지금까지 이시언이 제안 받아 출연했던 작품 속 그의 모습은 비슷한 결이었다. 이시언은 “앞으로 안 해 봤던 역할들은 다 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지금까지 안했던 역할들은 해보고 싶어요. 너무 비슷한 캐릭터를 많이 하진 않았나 싶어요. (어떤 캐릭터를 해보고 싶나?) 앞으로 조금 차분한 사람을 연기 해보고 싶어요. 이제는 에너지 올리기도 체력이 모자란 것 같아요.(웃음) 겉으로 다 보여주는 사람 말고 속으로 담고 있는 역할들도 좋을 것 같아요, 내면의 갈등이 있다거나. 어떻게 보면 저에게 그런 역할을 주신다는 게 감독님께는 도박이자 도전이실 텐데, 안 주시면 어쩔 수 없죠. 또 멜로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데뷔 10년차인데 아직 멜로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해 보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도 해보고 싶고. 다 해보고 싶은 것 같아요.(웃음)”
‘나 혼자 산다’ 덕분에 드라마 캐스팅이 됐다는 이시언의 말처럼, ‘나 혼자 산다’는 이시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시언은 ‘나 혼자 산다’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잠깐의 고민 후 대답을 전했다.
“그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다들 아시다시피 그걸로 제가 많이 알려졌고, 너무 감사해요. 너무 가족 같은 멤버들에게도 감사하고. 그저 생각하면 감사해요. 그것뿐인 것 같아요. 고맙고 감사한 마음. 저 같은 놈을 출연시켜 줘서 너무 감사하네요.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정말 생각이 안나요.”
이처럼 그에게 특별한 프로그램이지만, 다른 배우들이 그렇듯 이시언에게도 예능으로 인한 배역의 한계’는 피할 수 없는 우려였다.
“ ‘라이브’를 하기 전에는 예능으로 인해 어느 정도 캐릭터의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좋아해주셔서 나름의 걱정들을 조금은 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득과 실을 따지자면 저에게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면서 얻은 득이 더 많아요. 프로그램을 하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을 주셨고. 또 ‘플레이어’ 후반부에도 딥한 장면들을 많이 넣어주셔서 제 스스로 만족을 했다 싶어요. 좋게 생각하려고 해요.”
다양한 캐릭터로 대중을 만난 그이지만, 아직까지는 연기보다 예능으로 더욱 많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상황이다. “연기로서도 대중에게 자신을 깊게 각인시키고 싶을 것 같다”는 말에 이시언은 고민 없이 대답을 전했다.
“그런 욕심이 많아요. 욕심은 많은데, 앞으로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작년 초까지는 굉장히 조바심이 났어요. 뭔가 이미지가 굳어지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라이브’나 ‘플레이어’ 등을 통해서 그간 하지 않았던 부분도 보여드리다 보니,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롤 모델도 있었고, ‘꼭 주인공 한 번은 해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선이 지나니까 지금 하는 것들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왜 굳이 큰 역할을 맡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잘 돼야만 인생은 아니잖아요. 잘 안 돼도 인생인 거고. 저에게 역할을 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안 된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으려 해요. 처음에는 정말 ‘하나만 잘 하자’라는 생각으로 한 캐릭터만 잘하자 싶었는데 이제는 두루두루 다 경험해 보면서 잘 해내고 싶어요.”
지난 2009년 드라마 ‘친구’로 데뷔, 어느덧 데뷔 10년차를 맞은 이시언은 “시간이 정말 빨리 간 것 같다”며 소회를 전했다.
“그 10년 동안 저도 많이 변했고, 위치도 많이 변했구나 싶어요.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예전이었으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인터뷰도 이렇게 하고, 기분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사실 가진 게 너무 없어서 밥 먹는 것도 힘들었는데, 제가 선택한 길이기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먹고싶은 거 다 먹을 수 있고, 차도 있고, 옷도 사 입을 수 있다는 것이 많이 달라졌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2018년 한 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을 재미있게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덧붙인 이시언은 앞으로 ‘어떤 캐릭터에도 어울리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다.
“언젠가는 시청자 분들이 ‘이시언이라는 배우는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이 아닌 다른 분위기, 다른 캐릭터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그게 제 목표입니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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