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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가짜뉴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입력
2018.11.2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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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홍수시대다. 가짜뉴스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 용어는 이미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다. 오죽했으면 ‘가짜뉴스 시대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의 책까지 나왔을까. 가짜뉴스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고의로 거짓 또는 왜곡된 사실을 진실로 오인하게 만드는 내용의 정보’를 말한다. 과거에는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주로 증권가 소식지나 사설 정보지였다. 하지만 저널리즘 세계가 만인에게 개방되면서 지금은 누구나 뉴스를 만들어 유포할 수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가짜뉴스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곳은 없다. 그래도 특별히 주목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군사, 정치, 환경 세 분야가 아닐까 싶다. 가짜뉴스가 판치려면 그것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세 분야가 유난히 정보 왜곡과 조작에 취약한 것은 특성상 악마화(惡魔化), 혐오, 의심 등 가짜뉴스를 소비하는 심리적 기제와 잘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과 군사적 긴장은 가짜뉴스의 온상이었다. 한반도에서는 전쟁, 분단, 체제 대결 과정에서 수많은 가짜뉴스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남쪽에서는 ‘북한 악마론’이, 북쪽에서는 ‘남한 괴뢰론’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는 4월에 이어 8월, 12월까지 세 차례나 전쟁 위기설이 유포됐다. 최근에는 북한 삭간몰 지역에서 미신고 미사일 기지가 확인됐다는 미 싱크탱크의 보고서가 나오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북한 악마론’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전쟁위기설과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 모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치권도 군사 분야 못지않게 가짜뉴스로 뜨거운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재작년 트럼프 당선 이후다. 그런데 지금은 가짜뉴스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안이 봇물을 이룰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정치권은 가짜뉴스의 유력한 진원지이기도 하다. 대부분 정적이나 상대 정당을 쓰러뜨리기 위한 공격 목적으로 유포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패자일 수밖에 없는 ‘정치 혐오’로 귀결된다.

환경 분야에서도 가짜뉴스는 넘쳐난다. 주로 의혹 부풀리기에 능숙한 사이비 전문가들과 상업 언론에 의해 유포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짜뉴스는 굴절된 저널리즘과 함께 정쟁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최근 화제가 된 ‘태양광 괴담’이 좋은 예다. 에너지전환 정책에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가 앞서지 않았더라면 태양광 패널이 중금속 범벅이라는 비상식적인 내용을 검증도 없이 주장하거나 기사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규제가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검열과 처벌만으로 가짜뉴스를 줄일 수는 없다. 그래서 정보 편식을 막는 것,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편향된 가짜뉴스를 골라낼 수 있는 변별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릴수록 진짜뉴스를 더 많이 퍼뜨리고 사실에 기반을 둔 정직한 기사와 좋은 언론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귀담아들을 만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야가 언론 미디어 분야의 좁은 울타리에 갇히지 않도록 그물을 더 넓고 깊게 치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디어 기술과 심리학 지식을 접목하려는 ‘테크노코그니션(technocognition)’이 주목받고 있다. 허위 정보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공론의 장을 개선하려면 다양한 분야가 협업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들은 악의 화신이고 위험한 존재’라는 악마화 담론과 내면의 불안요소를 남 탓으로 돌리는 혐오 감정, 그리고 불편한 진실일수록 부정하고 싶은 도피 심리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진정으로 돌보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한 우리는 가짜뉴스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안병옥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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