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임명한 총리와 갈등을 빚고 있는 스리랑카 대통령이 과거 정적(政敵)을 차기 총리로 임명, ‘말 안 듣는’ 총리를 제거하려다 오히려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정파 간 갈등은 육탄전으로 비화했고, 의회에는 고춧가루를 탄 물이 뿌려지는가 하면 칼이 등장하는 등 혼란이 심화하고 있다.
19일 스리랑카 현지 언론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대통령은 전날 라닐 위크레마싱헤 총리, 마힌다 라자팍사 새 총리와 정국 혼란 수습 문제를 놓고 2시간가량 면담했지만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의회의 새 총리 불신임 재의결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서 의회에 3번째 표결을 요구했다.
앞서 시리세나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위크레마싱헤 총리를 갑자기 해임하고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새 총리로 앉힌 뒤 이달 초에는 의회 해산을 선언했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전격 해임의 배경으로 총리 측 각료들이 자신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자신이 헌법상 총리라고 반발하고 나섰고, 라자팍사 새 총리도 물러나지 않겠다며 맞서면서 스리랑카는 ‘한 지붕 두 총리’ 사태를 맞았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2015년 당시 제1 야당 당수였던 위크레마싱헤와 손잡고 라자팍사의 3선을 저지하며 2015년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 위크레마싱헤 총리가 자신의 비리 문제에 대립각을 세우자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이다.
혼란한 정국 수습을 위해 대법원이 의회 해산ㆍ조기 총선 명령을 내달 7일까지 유보하는 결정을 내놓긴 했지만 사태 수습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14, 16일 이뤄진 라자팍사 신임 총리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 표결에서는 라자팍사 지지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의사진행을 막는 등 심각한 폭력사태가 빚어졌다. 양측 의원들이 물병, 책, 의자 등을 던지고 고춧가루를 탄 물을 뿌리며 격하게 반발했다. 일부 의원은 작은 칼까지 꺼내 들고 휘두르기까지 했다.
이런 대립 구도의 이면에는 친(親) 중국파와 친인도파 간의 알력다툼이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라자팍사 재임 당시 위크레마싱헤를 포함한 야당 인사들은 라자팍사의 친중 행보를 강력 비판하며 인도와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위크레마싱헤는 시리세나와 손을 잡고 2015년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시리세나는 위크레마싱헤의 개혁안을 이행하지 않으려 했고, 이후 두 사람은 계속해서 충돌해왔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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