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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민주공화제는 급진적 평등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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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민주공화제는 급진적 평등도 담아”

입력
2018.11.20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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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ㆍ1운동과 임정수립’ 학술대회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내부 전시. 임정이 민주공화제를 선언한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내부 전시. 임정이 민주공화제를 선언한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주주의’란 말이 그렇게도 싫은가 보다. 박정희 정권 때는 그 앞에다 ‘한국적’이란 단어를 굳이 붙여 쓰더니,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때는 ‘자유’란 말을 붙이라고 성화였다. ‘한국적’, ‘자유’에 이어 최근 등장한 건 ‘공화주의’다. 민주주의 대신 주목하자는 말도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공화주의에는 ‘공공의 이익’과 ‘시민적 덕성’이란 설명이 붙는다. 왜 민주주의를 불편해 하는지, 맥락이 짚인다.

21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여는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과 의의’ 학술대회는 바로 우리나라에서의 ‘공화주의’ 역사를 파고 든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김현철 재단 연구위원은 주제 발표를 통해 1919년 임시정부가 임시헌장 제1조로 ‘민주공화제’를 선언한 것 자체는 “역사적 사건”이라 평가한다. 20세기 초의 시기에 헌법에다 ‘민주공화’란 표현을 쓴 건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대단히 선진적 조치이긴 한데 ‘민주’와 ‘공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김 연구위원은 물론, 신철희 서울대 선임연구원 또한 그 당시 “공화제란 왕이 없는 정치 체제라는 협소한 개념”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Republic의 번역어로 공화(共和)가 선택된 것부터 그렇다. 공화란, 원래 주나라 려왕이 탄핵당한 뒤 여러 제후들이 공동 통치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공공의 이익’보다 ‘왕이 없음’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왕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고 고종이 입헌군주제조차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에서, 제 아무리 강력한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단체들이라 해도 공화제를 꺼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망국은, 거꾸로 공화제를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독립운동가들이 이해한 1910년대 세계 정세를 추적했다. 우리는 흔히 민주공화제를 선언한 임정이 1차 세계대전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윤 연구교수는 이미 그 이전부터 해외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공화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억눌렸던 논의가 망국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다.

지난 8월 열린 '길 잃은 보수 정치, 공화주의에 주목한다' 세미나에 참석한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8월 열린 '길 잃은 보수 정치, 공화주의에 주목한다' 세미나에 참석한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병택 재단 연구위원이 보기에 민주공화제 선언은 망국 때문에 가능했지만, 망국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조선이 스스로 망한 게 아니라 일본에게 망해서다. 임정은 민주공화제를 선언했지만 임시헌장 8조엔 구황실 우대 조항을 넣어뒀다. 임시헌장 3조에는 ‘인민은 남녀귀천과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는 “급진적 평등의 목소리”를 넣어뒀다. 민주공화제 선언 아래에는 옛 왕조의 유산과 민주공화국의 미래 청사진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던 셈이다. 민주공화제 선언이 품은 급진적 평등을 감안해보면, 민주주의 싫다고 공화주의를 내세우는 건 충격이 더 큰 자살골일 수도 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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