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포용’ ’문재인 퇴진’ 주장 시대착오
명분 밀리는 싸움에 흠집내기 전략이지만
진보정부 독선ㆍ경직적 태도 ‘반동’ 키워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대한애국당 관계자들이 태극기 집회를 갖고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내에서 일고 있는 ‘태극기 부대’ 포용론은 시대착오적이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심지어 친박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걸 사과하라”고 복당파를 몰아치고 있다. 최근에는 보수 지식인을 자처하는 320명이 문재인 대통령퇴진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냈고, 주말이면 문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가 도심에서 열린다.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지만 현실이 그렇다.

혁명이나 그에 준하는 사회변혁에는 반동이 뒤따른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2년 전 ‘촛불혁명’이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면 일련의 극우적 흐름을 ‘반동’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류는 개혁세력이 표방하는 목적과 성과가 벽에 부닥칠 때 불안감을 교묘히 파고든다. 명분에 밀려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 흠집을 내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키는 전략인 셈이다.

프랑스혁명부터 근 200여 년간의 사회 변동을 연구해온 미국의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개혁을 지향하는 진보 담론을 무력화하는 반동세력의 ‘3가지 수사법’을 도출해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역효과 명제’와 “그래봤자 기존 체제는 바뀌지 않는다”는 ‘무용 명제’,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위험 명제’다. 한국사회에서 진행 중인 개혁정책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 담론을 이해하는 틀로 유용할 법하다.

이 논리를 동원하면 보수세력의 주장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허구이며, 오히려 안보를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레토릭이 된다. 하지만 북핵 협상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대화는 필요없고 제재만 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뿐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접근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수진영은 소득주도성장이 긍정적 효과는커녕 고용 축소와 저소득층 타격이라는 역효과를 낼 뿐 아니라 시장의 자유를 옥죄어 결국 우리 경제를 위험에 빠트린다는 논리로 공격한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세부 조정이나 개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데도 아예 태생 자체를 불온시한다. 소득재분배와 양극화 해소를 향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시대가 변하면 그에 맞게 정치 이념과 가치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오직 과거 상태로의 복원만을 원하는 것은 반동주의의 전형적 특징이다.

하지만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보수의 ‘반동적 수사법’ 못지 않게 진보주의자의 경직된 태도도 개혁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이다. 다시 허시먼을 소환하면 ‘반동의 명제’에 대응하기 위해 진보진영도 그에 조응하는 수사법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위험 명제’는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더 위험한 사태가 초래된다”고 뒤집고, ‘무용 명제’는 “역사는 진보하기 마련으로 이에 맞서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수사로 대치시켰다.

진리와 정의는 우리 편이라는 독선적이고 완고한 자세는 거꾸로 개혁을 지체시키고 저항세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성장의 수단이 아닌 정의의 실현으로 보는 시각은 단적인 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맞지만 이를 절대선으로 여기면 부작용이 생겨도 퇴로를 찾기 쉽지 않다. 역사적 필연성과 소명에 대한 신념이 절박하다면 이를 실현할 만한 준비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전 정권과 다를 바 없는 ‘코드인사’ 남용과 비타협적 대야관계, 소통 부족의 국정운영도 반동세력이 몸집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군사전문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말을 빌리면 “가장 발전된 민주정치에서조차 많은 토론은 다른 방법으로 내전을 계속하는 것”이다. 진보세력의 경직되고 독단적인 자세는 반동을 무럭무럭 자라게 만든다. 진보진영이 더 나은 세상과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더 실력을 쌓고, 더 겸손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