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어원이 한자어지만 언중들 사이에 어원 의식이 약해져 어원으로부터 멀어진 형태가 표준어가 된 말들이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호두이다. 국립국어원의 ‘국어 어휘 역사’에 따르면 호두는 한(漢)나라 장건(張騫)이 서역에서 들여온 것으로, 우리나라 15세기 문헌에 ‘胡桃’로 처음 나타났고 17세기부터 ‘호도’로 표기되었다. 그러나 이후 ‘호도’가 한자어라는 인식이 희박해지자 ㅗ 모음을 ㅜ 모음으로 발음하는 영향으로 20세기에 ‘호도’와 ‘호두’가 함께 쓰이다가 오늘날 ‘호두’가 표준어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앵도(櫻桃)’가 ‘앵두’로, ‘자도(紫桃)’가 ‘자두’로, ‘장고(杖鼓)’가 ‘장구’로, ‘주초(柱礎)’가 ‘주추(주춧돌)’로 바뀌었다.
이외에도 어원이 한자어지만 어원으로부터 멀어진 형태가 표준어가 된 말에는 ‘지루하다 ← 지리(支離)하다’, ‘주책 ← 주착(主着)’, ‘맹세 ← 맹서(盟誓)’, ‘서낭당 ← 성황당(城隍堂)’, ‘사글세 ← 삭월세(朔月貰), ‘강낭콩 ← 강남(江南)콩’ 등이 있다.
‘강낭콩’은 중국 양쯔강 이남인 강남(江南) 지방에서 건너와 우리나라 16세기 문헌에서는 ‘강남콩’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후 ‘강남’이 한자어라는 인식이 희박해지면서 ‘강남콩’의 세 번째 음절인 ‘콩’의 ‘ㅋ’의 영향으로 앞 음절 ‘남’의 받침 ‘ㅁ’을 ‘ㅋ’과 같은 연구개음(軟口蓋音)인 ‘ㅇ’으로 발음해 ‘강낭콩’이 되었고 현대 국어에서도 ‘강낭콩’을 표준어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한자어의 어원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부조(扶助)’, ‘사돈(査頓)’, ‘삼촌(三寸)’ 등은 ‘부주’, ‘사둔’, ‘삼춘’ 등이 아닌 한자어의 형태 그대로 표준어로 삼고 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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