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물체 약 50㎍ 증가… 앞으론 ‘플랑크 상수’로 정의
전류ㆍ온도ㆍ물질의 양 단위도 내년 5월 20일부터 새 기준
질량을 측정하는 킬로그램(㎏)에 대한 국제 정의가 130년 만에 바뀌었다. 전류의 기본단위인 암페어(A), 온도의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몰(㏖)까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본단위 4개가 한꺼번에 재정의됐다. 변경된 정의는 내년 5월 20일 ‘세계 측정의 날’부터 적용된다. 일상생활에는 별 변화가 없겠지만 첨단산업 분야에선 더욱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게 됐다.
16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선 주요 국제단위 7개 가운데 변하지 않는 숫자(상수)로 앞서 다시 정의된 길이(mㆍ미터)와 시간(sㆍ초), 광도(cdㆍ칸델라) 외에 나머지 4개 단위의 기준을 바꾸기로 의결했다. 측정의 척도인 기본단위를 다시 정의하기로 한 건 단위의 기준이 되는 물질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등 기존 단위 정의가 완벽하지 않아서다.
대표적인 게 ㎏이다. 국제 도량형 학계는 1889년 백금 90%와 이리듐 10%로 이뤄진 원기둥 모양의 원기(原器ㆍ높이와 지름 각각 39㎜)인 ‘르그랑K’를 1㎏의 국제 기준으로 정했다. 원기는 측정량의 단위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는 물체다. 르그랑K는 세 겹의 유리관에 쌓여 파리 인근 국제도량형국(BIPM) 지하 금고에 보관돼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염물질이 쌓이고 산화해 약 50㎍(마이크로그램ㆍ1㎍은 100만분의 1g)의 질량이 늘었다. 더 이상 1㎏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질량 기준인 ㎏에 문제가 생기면서 탄소의 질량을 기본으로 한 ㏖의 정의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다가 전류(A)와 온도(K) 단위의 기존 정의도 모호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1954년 삼중점 상태인 물의 열역학적 온도로 정해진 1K는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 원자의 동위원소 비율에 따라 삼중점 온도에 차이가 나는 한계가 있다. 삼중점은 기체ㆍ액체ㆍ고체가 함께 존재하는 현상이다. 1A는 1948년 ‘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원형 단면적을 가진 두 개의 평행한 직선 도체가 진공에서 1m 간격으로 유지될 때 둘 사이 힘이 생기게 하는 일정한 전류’라고 정의됐는데, ‘무한히 길고 무시할 만큼 작은’이란 게 정확히 얼마인지 알기 어려웠다.
물질을 이용해 단위를 다시 정의하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는 만큼 CGPM은 불변의 기준으로 4개 기본단위를 재정의하기로 한 것이다. 1983년 1m를 빛이 진공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이동한 거리로 정의한 것처럼 물질이 아닌, 변하지 않는 숫자를 기준으로 삼았다. 진공에서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 그 이전까지 1m는 백금과 이리듐 합금으로 만든 1m 길이의 자로 정의됐다.
㎏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 단위 에너지의 크기를 나타내는 ‘플랑크 상수’를 이용해 정의했다. 플랑크 상수는 중력과 전자기력을 이용한 키블 저울이란 초정밀 장치로 구할 수 있다. 양팔 저울 한쪽에 원기 1㎏을 놓은 뒤 반대편에는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코일을 설치한다. 코일에 전류를 흘리면 바닥 방향으로 전자기력이 발생해 저울이 다시 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이때 코일의 전류와 자기장의 세기로 1㎏ 질량에 해당하는 전자기력이 얼만지 알 수 있다.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은 “일정 시간 동안 중력과 전자기력이 물체에 한 일을 비교하면 1㎏ 질량에 대응하는 플랑크 상수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암페어(A), 켈빈(K), 몰(㏖) 단위도 상수인 아보가드로 상수, 기본 전하, 볼츠만 상수를 이용해 다시 정의됐다. 이 연구원은 “이번 재정의를 통해 7개 기본단위 모두 변하지 않는 일정 기준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박연규 표준연 물리표준본부장은 “측정 단위는 모든 과학과 산업의 핵심”이라며 “미세 오차까지 허용하지 않는 미래 산업의 기본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기본단위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라, 기본단위 측정 방식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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