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수비수 김영권(28ㆍ광저우 에버그란데)이 1년 만에 다시 주장 완장을 찬다.
파울루 벤투(49)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호주 브리즈번에서 오는 17일 호주, 20일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을 치른다. 벤투 감독은 지난 9월 부임 후 4경기(2승2무)를 치렀는데 원정 A매치는처음이다.
이번 대표팀에는 러시아월드컵 때 주장이었던 기성용(29ㆍ뉴캐슬), ‘벤투호’의 ‘캡틴’이었던 손흥민(26ㆍ토트넘)이 모두 빠졌는데 벤투 감독은 새 리더로 김영권을 낙점했다.
김영권은 전임 신태용(49) 감독 시절인 지난해 8월에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을 앞두고 주장으로 선임된 적이 있다.
그러나 경기 후 그는 “관중들의 함성으로 인해 동료들과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았다”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선수 간 의사소통을 의미한 말이었는데 팬들은 “응원을 해줘도 시끄럽다고 하느냐”며 발끈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김영권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비난받았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이후 김영권이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포털 댓글에는 조롱이 넘쳐났다. 그는 스마트폰 포털 뉴스페이지의 스포츠 섹션을 삭제한 적도 있다. 심리적인 위축은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태용 감독은 한동안 김영권을 대표팀에 부르지 않았다가 월드컵 직전에야 최종명단에 포함시켰다.
김영권은 월드컵 무대에서 진가를 입증했다. 특히 몸을 아끼지 않는 투지로 큰 박수를 받았다. 독일과 마지막 3차전(2-0 승)에서는 천금 같은 결승골로 ‘카잔의 기적’을 쓰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독일전 중계 당시 “김영권에게 5년, 아니 평생 까방권(까임방지권, 잘못해도 비난받지 않을 권리)을 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월드컵 후 사령탑이 바뀐 ‘벤투호’에서도 김영권은 4경기 모두 선발로 출전했다.
벤투 감독은 골키퍼와 수비수부터 차곡차곡 공격을 전개하는 ‘빌드 업’을 선호하는데 왼발잡이인데다 수비수치고 기술이 좋은 김영권이 그 시작점이다. 수비라인에서 김영권과 줄곧 호흡을 맞췄던 장현수(27ㆍ도쿄)가 병역특혜 봉사활동 서류 조작으로 국가대표 자격이 영구 박탈돼 김영권 어깨는 더 무겁다.
지난 15일 브리즈번의 페리 파크에서 대표팀 훈련을 마치고 만난 김영권은 “대표팀 주장은 힘들고, 외롭기도 하고,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어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 할지 많이 생각하고 있다. 부상 등 여러 이유로 많은 선수가 빠져 힘든 부분이 있지만, 이번에 모인 선수들과 최대한 잘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김영권은 현재 소속 팀 광저우에서 경기 출전을 거의 못하고 있다. 광저우가 1군 외국인 선수 쿼터(4명)를 파울리뉴 등 미드필더와 공격수로만 채웠기 때문이다. 월드컵 후 유럽 몇몇 구단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광저우가 30억 원 이상의 높은 이적료를 책정하는 바람에 팀을 옮기지도 못했다.
김영권은 사비로 개인 트레이너까지 고용해 가며 감각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는 “1군 경기가 더 어렵고 경기력에 있어선 더 좋겠지만, 1군과 함께 운동하고 2군에서도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며 “개인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기량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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