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이었다.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 아래서 기도회가 열린다기에 다녀왔다. 그날은 두 사람이 굴뚝 위로 올라가 농성을 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날이었다. 도로변에는 시민들과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처럼 처음 온 이도 많았고, 종교가 없는 이들도 농성을 지지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박준호, 홍기탁씨는 2017년 11월 12일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랐다. 그리고 굴뚝 아래에서도 김옥배, 조정기, 차광호씨가 농성 중이다. 이들은 한국합섬의 노동자들이었다. 한국합섬은 한때 국내에서 폴리에스테르 원사 생산량 1위 기업이었다. 여러 개의 섬유, 직물 계열사를 거느릴 만큼 큰 기업이었다. 그러나 2007년 한국합섬은 파산했고 2010년 스타플렉스가 인수했다. 인수할 당시 스타플렉스는 한국합섬 노동자 100명의 고용을 승계했고, 스타케미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런데 2년이 안 되던 시점에 회사는 공장 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2013년 1월 2일 시무식 자리에서였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고, 공장 설비를 철수했다. 갑작스러운 사직 통보에 2015년 차광호씨는 공장 안 굴뚝으로 올라가 408일 만에 사측과 합의를 하면서 내려왔다. 그리고 충남 아산에 있는 파인텍으로 옮겨 가서 일을 시작했다.
구미에서 아산으로 일터가 바뀌었다. 한국합섬에서 스타케미칼, 파인텍으로 회사도 바뀌었다. 잔업을 하면 한 달에 250만~300만원까지 받던 임금도 만근을 해야 130만원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동료들도 줄었다. 그리고 지금은 파인텍마저도 사라지는 상황이다. 일할 곳이 한순간에 없어진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일터를 잃었지만, 기업은 이윤을 얻었다. 스타플렉스는 800억원이 넘는 한국합섬을 399억원에 인수했고, 공장 설비 등을 팔아 차액을 남겼다. 일할 사람을 해고했으니 인건비도 절감했다. 회사가 바뀌었으니 스타플렉스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이것은 파인텍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또한 언제라도 기업이나 고용주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갑자기 일터를 잃어버리더라도 속수무책으로 쫓겨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간접고용, 파견근로는 점점 늘어나고,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업장을 이동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해고에도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 어디에 부당함을 요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굴뚝에 갔던 날, 기도회에서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예루살렘에는 베드자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은 천사가 내려와 물을 저으면 아픈 이가 병이 나아 돌아가는 기적의 연못이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이 병을 낫기 위해 많이 몰려들었는데, 중풍에 걸려 38년 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한 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예수에게 아무도 자신을 연못에 넣어주지 않아서 병이 낫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였고, 예수가 자리를 걷어 걸어가라고 하자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날은 안식일이었다”는 말로 끝난다.
굴뚝 위에서 1년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곳에서 폭염과 혹한기를 보내며 매일 눈을 감고 뜨는 것은 38년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두 번째 겨울이다.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잠을 자는 것도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체중도 급격하게 줄어 40kg대에 접어들고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굴뚝에는 천사나 예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굴뚝 위에서 “정작 굴뚝 아래 세상은 괜찮습니까”라고 묻는다. 당신들이 그곳에 있어, 이 세상은 괜찮지 않다고, 그러니 힘내시라고. 이제는 우리가 답해야 한다. 이들이 무사히 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세상은 우리가 움직일 때 일어날 것이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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