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재판ㆍ분식회계 이어‘삼우’ 위장계열사 혐의까지
“과거 잘못 바로잡기 중요하지만 오래 끌면 경영활동 지장”
“착잡하다.”
금융당국이 “고의 분식회계가 맞다”고 결론 낸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를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과거의 그릇된관행은바로잡아야 한다든가, 대기업이라도 잘못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걸 부정하는 이는많지 않다. 하지만 국내 대표기업 삼성을 향해 여러 국가기관이 잇따라 수사를 의뢰하고, 그 처리 과정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데 대한 현실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줄 잇는 삼성 수사ㆍ재판
1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현재 여러 건의 수사와 재판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돼 작년 2월 기소된 이후, 여전히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고용노동부의 수사 의뢰 등으로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삼성전자서비스 등 삼성 계열사의 이른바 노조와해 공작 의혹 수사는 지난 9월 32명이 무더기 기소된 이후진행형이다.
작년 4월 금융감독원의 회계감리 착수로 비롯된 삼성바이오에 대한 분식회계 의혹은 14일 1차로 금융당국의 “분식이 맞다”고판단해, 이제 검찰 수사를 앞두게 됐다. 이 사안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과 연관성이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수사가 더욱 확대ㆍ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4일 “국내 최대 건축설계회사인 삼우종합건축사무소가 지난 30여 년간 삼성의 위장 계열사였다”며 이건희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여기에 삼성이 에버랜드 소유 땅의 공시지가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국토교통부의 수사 의뢰로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이는 모두 정부 여러 기관이 수사의 단초를 제공하고 검찰을 거쳐 법원으로 향하는 사안이란 공통점이 있다. 이를 두고 당사자인 삼성 내부에선 드러내지 못하는 불만이 팽배하다. 대개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감정 섞인 불만이다.
◇장기화ㆍ혼선 우려도 커져
하지만 한발 떨어져 삼성을 지켜보는 다른기업인 사이에서도 우려와 안타까움의 강도가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우선 사안이 장기화되는 데 대한 우려다. A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오래 끄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하향 곡선을 그리는 국내외 경기 상황에서 본래 사업영역에 집중할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데, 대표 기업에 대한 ‘사정 바람’이 장기화할수록 다른 기업 입장에서도 ‘언제 불똥이 튈까’ 싶어 장기적인 투자나 고용 계획을 그리기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재계에선 삼성에 대한 각종 수사ㆍ송사가 이번 정부 내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당장 삼성바이오 사태만 해도 금융당국의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이 예고돼 있다. 워낙 정부와 삼성의 의견 차가 심해 향후 검찰 수사와 얽혀 최종 판단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 시작된 이후 사실상 멈춰서 있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언제 재개될 지 불투명한 상태다.
정부가 헷갈리는 신호를 보내는 데서 오는 혼란도 상당하다. 권력과의 관계에 민감한 기업에 정치인과 기업인의 만남은분명한유화의 표시이다. 재계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인도 방문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마주하고, 9월 방북에 동행한 이후에도 삼성을 향한 정부의 제재가 추가되는 데 당혹감을 표하고 있다. 정권의 속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 자체가 사업에선 큰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B대기업 관계자는 삼성바이오 사태를 두고 무단횡단 단속을 예로 들었다. “진짜 분식회계가 맞다고 해도 지난 정부에선 같은 사안에 ‘문제 없다’는 판단으로 무단횡단을 눈감아 줬다면, 이번엔 숨어 있다가 정색하고 단속에 나선 셈”이라는 것이다. 그는 “위법을 예방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은 보이지 않고, 난폭한 단속자의 모습만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분식회계에 대한 판단 변경으로 정부 스스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또 다른 빌미를 제공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C 대기업 관계자는 “같은 대상을 두고 지적이 거듭될수록 현실에선 ‘피로감’도 쌓이기 마련”이라며 “징계와 처벌은 가급적 빨리 매듭짓고 경제에 새 동력을 불어넣어줘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요원하다”고 아쉬워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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