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읍성 군기고 건물터 근처의
수혈유적ㆍ퇴적토에서 11점 발견
임진왜란 발발 전 선조 때 발명
심지 길이 따라 폭발 시간 조절
사극에 나오는 포탄 폭발 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일까. 포탄 폭발로 거대한 불바다를 이루는 장면은 대부분 고증이 잘못된 것이지만, 포탄은 있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시한폭탄 비격진천뢰다. 비격진천뢰는 목표물에 날아가서 굉음과 섬광, 수많은 파편을 쏟아내며 폭발하는 인마살상용 무기였다.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에서 ‘조선시대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가 무더기로 나왔다. 호남문화재연구원은 15일 현장을 공개하고 “군기고로 추정되는 건물터 근처 5.1m 길이 수혈(구덩이) 유적과 퇴적토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나온 비격진천뢰는 지름 21㎝, 무게 17~18㎏ 정도로 비교적 온전한 상태다. 이전까지 보고된 비격진천뢰는 모두 6점으로, 그 중 1점은 보물 제860호로 지정돼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한 번에 무더기로 출토된 사례는 처음이라 학계의 관심이 쏠린다. 이영덕 호남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비격진천뢰 6점은 수혈 유적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나왔고, 나머지 5점은 주변 퇴적토에서 발견됐다”며 “폭탄은 모두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무장읍성 비격진천뢰를 제작한 시점은 명확하게 알기 어렵지만, 구덩이에 폭탄을 모아놨다는 점에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묻은 듯하다”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관군이 도망가면서 은닉한 듯하다”고 덧붙였다.
비격진천뢰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선조(재위 1567~1608) 연간에 화포장 이장손이 발명해 조선 후기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쇠로 만든 둥그런 모양으로 속에는 화약과 철조각, 오늘날 폭탄의 신관(발화 장치) 역할을 하는 죽통이 들어있다. 죽통 속에는 나선형으로 골을 판 막대기(목곡)가 있고, 목곡에는 도화선인 화약선을 감았다. 이 심지의 길이에 따라 폭발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다.
위쪽과 옆쪽에는 각각 구멍이 있다. 죽통을 폭탄 몸통에 넣은 후 뚜껑을 덮고 입구를 막는다. 이어 허리 부분에 있는 구멍을 통해 화약을 가득 넣고 나무로 구멍을 막는다. 죽통 밖으로 빠져 나온 화약 심지에 불을 붙이면 시간이 지나 터지는 원리다.
무기의 위력은 여러 문헌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5년(1592) 9월 1일 기사에는 “밤에 몰래 군사를 다시 진격시켜 성 밖에서 비격진천뢰를 성 안으로 발사해 진 안에 떨어뜨렸다. 적이 그 제도를 몰랐으므로 다투어 구경하면서 서로 밀고 당기며 만져보는 중에 조금 있다가 포(砲)가 그 속에서 터지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쇳조각이 별처럼 부서져 나갔다”는 대목이 있다.
중국에도 비격진천뢰와 비슷한 진천뢰라는 작렬탄 무기가 있다. 하지만 이 진천뢰는 철로 만든 용기 안에 화약을 채워 넣은 것으로 휴대용 폭탄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광 건국대박물관 학예실장은 저서 ‘화염 조선’을 통해 “비격진천뢰는 중국 진천뢰와 달리 신관 역할을 하는 죽통이 형성되어 있어 폭발 시간을 지연시킴으로써 완구에 의해 발사가 가능했다”며 “비격진천뢰는 중국의 진천뢰와는 성격이 다른 독창적인 무기”라고 주장했다.
고창 무장현 읍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 왜구의 약탈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길이 1.2㎞의 성이다. 고창군은 2003년 복원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연차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현재까지 건물지와 시설물, 성벽, 문지, 해자 등이 확인됐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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