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보안 고려 공모과정 빼면서도
“양 前대법원장 비롯 고위 간부들
사법행정권 남용해 각 범행 실행”
‘대법원장’ 표현 100여차례 언급
강제징용 재판거래 등 지휘 묘사
일선법관 재판에까지 직접 관여
박병대ㆍ고영한 진술ㆍ증거 정리해
양 前대법원장 직접 조사할 방침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사실(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에는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70) 전 대법원장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다. 일선 법원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일상적 재판개입이 양 전 대법원장의 묵인과 방조, 지시와 승인에 의해 이뤄졌다는 정황들이 담겼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임 전 차장의 공범이자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적시함에 따라, 소환조사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15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검찰은 임 전 차장을 기소하면서 임종헌, 대법원장(양승태), 법원행정처장 등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 수뇌부를 사법농단 범행의 주체로 표기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임 전 차장 공소장에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 등이 위법ㆍ부당하게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2013년 9월부터 2017년3월까지 각 범행을 실행했다”고 적시했다. 수사 보안을 고려해 세부적인 공모 과정을 적지 않았지만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거의 모든 의혹에 관여한 핵심 피의자로 보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공소장에는 100여 차례에 거쳐 ’대법원장’이라는 표현이 언급돼 있다. 재판거래 의혹 중 핵심으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와 사법부간의 거래를 사실상 지휘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묘사됐다. 우선 재판개입의 반대급부로 사법부가 얻고자 했던 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은 2014년 10월 양 전 대법원장의 오스트리아 방문 당시 송영완 당시 대사에게 직접 요구한 것으로 적시됐다. 기존 재판 결과(징용피해자에 대한 보상)를 뒤집기 위한 사전 단계로 청와대가 요구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는 양 전 대법원장 집무실에서 논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전 차장에게 “임기 내에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고 말했고, 임 전 차장은 이 같은 내용을 외교부에 전달한 뒤, 회의 내용을 양 전 대법원장에 다시 보고했다.
대법원 재판뿐만이 아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의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부당하게 번복시키는 등 일선법관 재판에까지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당시 임 전 차장은 양 전 대법원장 승인을 받기 위해 결정을 번복할 구체적 방법과 은폐 시나리오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 같은 내용의 재판개입은 실제 실행에 옮겨진 것으로 조사됐다. 공소사실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재판개입 문건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으로부터 직접 대면보고를 받았다는 내용도 있다.
검찰이 30여 개에 이르는 임 전 차장 범죄사실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함에 따라 관심은 양 전 대법원장 소환 시기와 함께 공개 소환여부 등 형식에 쏠리게 됐다. 검찰은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을 19일 소환한 뒤, 그 후임인 고영한 전 처장을 조사할 방침이다. 그 다음 확보된 증거와 진술을 정리하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접 조사를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임 전 차장 기소는 사법농단 정점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 시작”이라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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