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피해 여성이 심한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성희롱ㆍ성폭력 사건 판결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최근 한 판사가 법률전문지에 낡은 정조 관념에 기반한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문제 제기한 글에 공감했다.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쉽게 극복하기 어렵더라도 그것은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 또는 ‘상당한 기간 동안’, ‘치유하기 어려운’ 또는 ‘잊기 어려운’ 고통이나 상처이지, 평생 씻을 수 없는 오점은 아니다.”
□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학생의 날(3일)을 맞아 성차별 언어 사례를 접수했다. 학생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건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된 수식어였다. 예컨대 여학생에게 ‘조신한’ ‘예쁜’ ‘얌전한’, 남학생에게 ‘듬직한’ ‘멋진’ ‘대범한’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다. 앞서 재단은 시민 의견을 들어 성평등 언어사전을 내놓았다. “총각은 처녀작을 만들 수 없나? ‘첫’이라는 의미로 ‘처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성차별이다.” “아빠는 유모차(乳母車)를 끌 수 없나? 아이가 중심이 되는 유아차(乳兒車)로 바꾸자.”
□ 신문사 다니며 ‘남기자’로 불린 적은 없다. 여성은 다르다. ‘여기자, 여직원, 여교수, 여검사, 여의사, 여비서, 여배우, 여군, 여경’. 이런 성차별 표현은 언론에도 흔히 등장한다.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만 ‘여’라는 성별을 붙이는 게 대표적이다. 연합뉴스가 기사에서 여성만 성별을 표시하는 건 여성 차별적이고 ‘남성이 표준’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며 표기 방식 개선에 나섰다. 한 방송사는 저출산(低出産)이 인구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 맞추는 성차별적 용어로 보고 저출생(低出生)으로 바꾸기로 했다.
□ 가족 내 호칭 중에도 성차별 단어가 많다. 예컨대 남편 집안은 시댁(媤宅)으로 높여 부르고 아내 집안은 처가(妻家)로 낮춰 부른다. 양가 조부를 부를 때도 친(親)할아버지, 외(外)할아버지로 나눈다. 대개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용어를 차별로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유방식과 행동을 지배한다. 그렇다고 언어가 불사신은 아니다. 사멸하고 생성된다. 언어의 적절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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