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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임금 사라지고 사업성 불투명... '광주형 일자리' 좌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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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임금 사라지고 사업성 불투명... '광주형 일자리' 좌초 위기

입력
2018.11.15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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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송정근 기자/2018-11-1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송정근 기자/2018-11-14(한국일보)

반값 임금으로 1만여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광주시가 14일 반발하는 지역 노동계를 달래기 위해 처음 취지가 크게 퇴색된 방안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반값 임금 대신 ‘동일노동ㆍ동일임금’을 원칙으로 한 적정임금을 포함해 현대자동차가 참여할 유인이 사실상 사라졌다.

광주시는 지역 노동계와 합의문 작성 후 현대차와 협상만 거치면 완성차 공장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자동차 업계에선 “현대차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합의로 사실상 광주형 일자리 실현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광주시 주장과 달리 설립 취지 퇴색

광주시는 13일 오후 9시부터 3시간여간 이어진 협상을 통해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한 지역 노동계로부터 현대차와 협상의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공개했다. 이병훈 광주시 부시장은 “노동계와 새로운 노정관계를 정립했다는 의미가 있으며, 현대차와 협상도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합의문을 살펴보면 광주형 일자리 설립 취지가 크게 퇴색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향후 현대차와 협상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합의문은 근로자 적정임금을 ‘공정임금의 속성을 갖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리에 따라 합리적인 기준에 의거해 책정되는 게 원칙’이라고 규정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 5곳 연평균 임금(9,213만원)과 비슷한 규모로 연봉이 책정돼야 한다고 명문화한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별도의 연구용역을 통해 적정임금을 설정할 것”이라고 모호하게 해명했다.

시는 애초 지역 내 노사정 타협을 통해 근로자 임금을 기존 자동차 업체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 현대차가 참여하도록 혜택을 주는 대신, 근로자에게는 정부와 함께 주거ㆍ교육ㆍ의료 등 복지 지원을 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었다. 국내 생산시설 과잉 상태인 현대차가 광주형 일자리에 참여를 결정한 이유도 고비용 부담을 덜고, 위탁 공장인 만큼 노사분규를 겪지 않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5년간 임금ㆍ단체협약 협상 유예 △주 44시간 근무 △연봉 3,500만원 등의 근로조건을 협약서에 넣자고 요구한 것도, 5년 계약 기간 노동조건이 쉽게 바뀌지 않도록 보장해달라는 의미”고 말했다.

◇반쪽짜리 노동계 참여로 반발 지속

또 합의문에는 추후 노조 설립이나 기존 현대차 노조 가입의 문을 열어뒀다. 현대차는 광주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경우 수익률이 낮아 지역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면 투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진행 현대차 사장은 이날 서울 서초동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서 열린 자동차산업발전위원회에서 “현대차 투자 여부는 광주시에서 확인하라”며 말을 아꼈다.

민주노총의 반발도 현대차가 광주형 일자리 참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고안 당시 참여하기로 했던 민노총은 이번 광주시와 합의에서 빠졌다. 민노총 산하에 있는 현대차 노조는 “현대차가 광주시와 협약을 체결하면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13일에도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를 방문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 위반이며 한국자동차 산업의 재앙을 불러올 실패한 투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4일에는 기아차 노조까지 가세해 “조합원의 고용을 위협하는 광주형 일자리를 총파업 투쟁으로 분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형 일자리는 반쪽 노동계만 참여하는 순간부터 노사 상생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시작부터 사업성 불투명한 투자계획

공급과잉 우려에 대해서도 광주시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에서 생산할 차는 1ℓ 미만 경형SUV 10만대다. 국내 경차 수요가 연 14만대에 불과한 데다, 현대차 자체 경차 생산라인(연 40만대)조차 완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잉 시설이다. “광주 경차공장까지 신설되면 공급과잉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현대차 노조 측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광주공장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내연기관차를 접고 친환경차로 전환하는 과도기여서, 경형SUV를 얼마나 오래 생산할지 불투명하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광주시도 생산라인이 교체되는 5년 후에 친환경차로 생산 차종을 바꾸자고 현대차 측에 요구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광주형 일자리는 자동차 산업의 현실을 잘 모른 채 정치권에서 일자리 창출만 생각하며 추진한 사업”이라며 “위기에 처한 자동차 산업이 회생하려면,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시설을 재가동할 수 있도록 노동계와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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