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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엔] 월 500만원 ‘아찔한 유혹’… 배달기사의 목숨 건 질주

입력
2018.11.14 18:00
수정
2018.11.15 09: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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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천국’의 소리 없는 아우성

[아슬아슬 곡예 운전] 배달 건당 수입을 가져가는 ‘지입제’ 배달 대행기사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기사들 사이에서는 배달 주문이 몰리는 시간 대에 최대한 많은 건수를 처리하기 위해선 ‘좋은 콜’을 선점하고 안전하게 신호를 위반하는 능력이 필수로 통한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논현역 앞 도로에서 한 배달 기사가 달리는 차량들을 피해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을 하고 있다.
[아슬아슬 곡예 운전] 배달 건당 수입을 가져가는 ‘지입제’ 배달 대행기사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기사들 사이에서는 배달 주문이 몰리는 시간 대에 최대한 많은 건수를 처리하기 위해선 ‘좋은 콜’을 선점하고 안전하게 신호를 위반하는 능력이 필수로 통한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논현역 앞 도로에서 한 배달 기사가 달리는 차량들을 피해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을 하고 있다.
[보행신호 무시] 3일 경기 고양시에서 헬멧을 쓰지 않은 배달 기사가 보행신호가 들어온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질주하고 있다.
[보행신호 무시] 3일 경기 고양시에서 헬멧을 쓰지 않은 배달 기사가 보행신호가 들어온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질주하고 있다.
[보행신호 무시] 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보행자들 사이를 질주하는 배달 대행 기사.
[보행신호 무시] 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보행자들 사이를 질주하는 배달 대행 기사.
[보행신호 무시] 한 배달 대행기사가 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보행신호가 들어온 횡단보도 위를 질주하고 있다.
[보행신호 무시] 한 배달 대행기사가 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보행신호가 들어온 횡단보도 위를 질주하고 있다.

‘불금’인 지난 2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앞. 배달 오토바이 여러 대가 보행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 위를 빠른 속도로 가로질렀다. 교차로 신호 무시는 기본, 중앙선과 인도를 넘나드는 배달 오토바이의 무법 질주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 강남 일대와 대학로, 홍대 앞, 신림동, 안암동, 경기 고양시 등에서 배달 오토바이의 운행 실태를 지켜본 결과 교통법규를 지키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었다. 2일 신논현역 앞을 지나던 배달 기사 이모(34)씨는 “지킬 것 다 지키면서 오토바이 배달을 어떻게 하느냐”고 강변했다.

배달 기사들이 ‘지킬 것 안 지키는’ 행태는 고정 급여 없이 배달 건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지입제’ 계약과 관련이 깊다. 지입제는 월급제나 파트타임에 비해 능력껏 수입을 올릴 수 있어 배달 기사들이 선호하지만 한 건이라도 더 하려고 서두르다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건당 수수료에 목숨을 거는 배달 기사의 숫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음식 배달 앱 시장이 크게 성장한 데다 배달 대행업체들이 밀려드는 주문량 처리에 효과적인 지입제 기사 모집에 더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구인구직 사이트마다 ‘책임감과 성실함만 있으시다면 월 250만~500만원까지 벌어 가실 수 있습니다’ 또는 ‘오더는 넘쳐나니 오셔서 능력껏 마니마니 벌어 가세요’ 등의 광고 문구가 넘쳐난다. 심지어 월 800만원의 수익이 가능하다고 유혹하는 업체도 있다.

“교통신호 다 지키면 배달 일 못 해”

건수 따라 수입… 곡예 운전은 기본

좋은 콜 잡으려 휴대폰서 눈 못 떼

그러나 현실적으로 월 500만원을 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배달 건당 수익을 3,500원으로 잡았을 때 하루 10시간씩, 한 달 내내 근무할 경우 매일 50건 정도의 배달을 해야만 가능한 액수다. 12분당 1건꼴이지만 배달 수요가 저녁부터 밤사이 4~5시간 동안 집중되는 것을 감안하면 건당 배달 시간은 더 단축돼야 한다.

월 500만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선 다른 기사들과의 생존경쟁에서도 이겨야 한다. 특히, 배달비는 동일하되 소요 시간이 적게 걸리는 일명 ‘좋은 콜’을 선점하는 능력은 필수다. 업체가 소속 기사들에게 동시에 보내는 주문 콜 중에서 좋은 콜을 얼마나 따내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찔한 곡예운전 중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다.

[틈만 나면 주문 콜 확인]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한 배달 대행기사가 잠시 정차한 틈에 스마트폰으로 주문 콜을 확인하고 있다.
[틈만 나면 주문 콜 확인]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한 배달 대행기사가 잠시 정차한 틈에 스마트폰으로 주문 콜을 확인하고 있다.
[인도 주행] 3일 경기 고양시의 인도 위를 달리고 있는 배달 오토바이.
[인도 주행] 3일 경기 고양시의 인도 위를 달리고 있는 배달 오토바이.
[인도 주행] 한 배달 기사가 3일 경기 고양시의 인도 위에서 보행자들 사이로 주행하고 있다.
[인도 주행] 한 배달 기사가 3일 경기 고양시의 인도 위에서 보행자들 사이로 주행하고 있다.

항상 사고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하면서도 사고를 당해선 안 된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과 길음동 일대에서 활동하는 김모(35)씨는 지난달 초 역주행을 하다 빗길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지입제 배달 기사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사고 직전 하루 20만원까지도 벌어 봤다는 김씨는 현재 하루 10만원 벌이에 그치고 있다.

사고 시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영업용 오토바이는 연간 손해보험료가 200만원 선에 육박하고 본인의 치료비와 오토바이 수리비까지 보상받으려면 보험료가 500만원까지 치솟기 때문에 보험 가입은 엄두를 못 낸다.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본인 과실이 큰 경우엔 부담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다. 업체와 기사가 보험료를 절반씩 내야 하는 산재 보험 역시 양측 모두 꺼리는 경우가 많아 가입률은 높지 않다.

우후죽순 배달 대행업체 안전관리는 나 몰라라

“잘하면 많이 가져가…” 되레 경쟁 부추기지만

주문 몰리는 시간 한정, 500만원 수입은 어려워

지입제 기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한 만큼’ 수수료를 챙기는 배달 대행업체는 정작 기사들의 사고 위험을 줄이는 노력에는 관심이 없다. 일부 대형 업체에서 헬멧 미착용 시 지급 수수료를 차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배달 업무 특성상 지속적인 관리 감독이 어렵고, 또 다른 업체의 안전운행 교육 프로그램 역시 강제성이 없어 유명무실하다. 한 대형 배달 대행업체의 구인 업무 관계자는 1일 구직자를 가장한 기자의 질문에 “헬멧 같은 안전장비는 웬만하면 착용하길 권장하지만 착용하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다”고 밝혔다.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 ‘라이더 유니언’ 창립을 준비 중인 배달 기사 박정훈(33)씨는 “위험을 무릅쓴 배달을 줄이기 위해선 정부가 나서서 비현실적으로 비싼 보험료를 조정하고, 고용노동부와 지자체가 배달노동에 대한 안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기본적인 노동 여건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혜윤 인턴기자

[역주행] 4일 한 배달 오토바이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일방통행 길을 역주행하고 있다.
[역주행] 4일 한 배달 오토바이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일방통행 길을 역주행하고 있다.
0[역주행] 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일방통행 길을 역주행하고 있는 배달 오토바이.
0[역주행] 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일방통행 길을 역주행하고 있는 배달 오토바이.
[역주행] 3일 경기 고양시의 대로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역주행을 하고 있다.
[역주행] 3일 경기 고양시의 대로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역주행을 하고 있다.
2일 저녁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보행신호가 들어온 횡단보도 위를 배달 오토바이들이 태연하게 지나치고 있다.
2일 저녁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보행신호가 들어온 횡단보도 위를 배달 오토바이들이 태연하게 지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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