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적용 대상 늘렸어도… 장애인 근로시간만 줄어
최저임금 인상과 종이컵 사용 제한 등으로 장애인직업재활시설들이 임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장애인들만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주변의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의 특수성과 작업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 행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본보와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인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14일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로부터 받은 ‘직업재활시설 근로장애인 고용변화 및 최저임금 적용 제외 심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정책으로 올해 근무형태가 바뀐 근로장애인은 1,35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전체 직업재활시설 620여개 중 350개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대상 시설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1만500여명으로, 약 13%(1,358명)가 최저임금 정책으로 타격을 받은 셈이다.
올해(1~10월) 퇴사 처리된 장애인은 117명, 훈련생으로 전환된 장애인은 73명으로 조사됐다. 근로자에서 훈련생으로 전환되면 급여는 수당 형태로 바뀌고, 4대 보험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1,168명은 1일 근로시간이 줄었다. 이 가운데 4시간 이상 근무시간이 줄어든 장애인은 116명에 달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형태에 영향을 준 것은 지난해 말부터 최저임금을 받는 장애인이 늘도록 관련 기준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작업능력 평가 값에 따라 해당 장애인이 최저임금 적용 대상인지를 판단한다. 기존에는 평가 값의 90% 미만인 경우에만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지난해 12월부터 이 기준을 70% 미만으로 낮췄다. 지난 7월부터는 작업능력 평가 방식도 바뀌어 최저임금 적용 제외 심사에서 탈락하는 장애인이 늘었다.
정책 변화로 전체 근로장애인의 40% 이상이 적용 제외 인가를 신청했다. 지난달까지 신청한 장애인은 4,480명으로, 이 중 231명이 탈락됐다. 이에 따라 15명은 퇴사 조치됐고, 20명은 훈련생으로 전환됐다. 116명은 퇴사와 훈련생 전환을 두고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탈락한 인원 중 최저임금 대상이 된 인원은 80명에 그쳤다. 신직수 협회 사무국장은 “최저임금을 줄 수 없는 시설은 장애인의 근무시간을 줄 일 수밖에 없는데, 그 시간에 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다”며 “오히려 장애인 부모들의 불안감만 키운 꼴”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종이컵 사용 제한 정책도 장애인들을 퇴사 위기로 내몰고 있다. 전국에 종이컵을 생산하는 직업재활시설은 11곳으로, 이 가운데 8곳은 7월 한 달 매출이 ‘0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근로자 307명 중 31%(94명)가 훈련생으로 전환됐다. 협회가 대책 마련을 요구하자 정부가 내놓은 안은 올 연말까지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업종 변경 컨설팅이 전부다.
상황은 이렇지만 정부의 지원책은 역부족이라는 게 협회의 설명이다. 전국 시설 379곳 중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한 곳은 108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자금 지원을 받은 곳은 43곳에 그쳤다. 또 101곳은 자금 지원을 신청했지만, 자격 미달 판정을 받아 신청 조차 하지 못했다. 신 사무국장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어려워도 버티는 시설이 많은데, 더는 못 버틴다고 판단되면 장애인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며 “올 겨울부터 피해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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