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 여학생의 ‘발’만 노려 수백여 차례 몰래 촬영한 남학생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신체 노출이 거의 없다고 해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려 ‘함부로 촬영 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했다면 유죄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강영기 판사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학생 A(18)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고교 재학 중이던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같은 반 여학생 6명의 발 부위를 휴대폰 무음 카메라로 364회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외 성인사이트에 3회에 걸쳐 게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재판 쟁점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 신체’에 발 부위의 해당 여부다. 성폭력처벌법 14조1항에 따르면, 해당 요건을 충족하는 불법 촬영ㆍ유포 범죄에 대해서만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릴 수 있다. A씨 측은 “발 부위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가 ‘발 부위에 관심이 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영상을 성인사이트의 발 카테고리에 게시해 발에 성적 자극을 느끼는 이들의 성적 대상이 되도록 했다”면서 “일상 공간에서 촬영된 신체 노출이 거의 없는 발 부위 사진이더라도 단순한 부끄러움이나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성적 자유나 함부로 촬영 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이라는 용어 자체와 그 대상이 협소한 요건은 그간 법원의 오락가락 불법 촬영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치마 입은 여성의 다리를 촬영한 남성에게는 “전신을 그대로 촬영했고 의상이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았다”고 무죄를, 반바지차림의 여성을 촬영한 남성에게는 “전신이 촬영됐지만 허벅지가 부각됐다”고 유죄를 선고하는 식이었다. 최근 6년간 불법 촬영 범죄 실형 선고 비율이 8.7%에 머문 게 애매한 요건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앞서 2008년 대법원은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 정도 △의도와 경위 △장소 각도 거리 등을 기준으로 제시했지만,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노출 정도로 범죄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국회에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 문구로 개정하기 위해 박남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계류 중이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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