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가 전방위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가해자인 신일철주금에는 무대응 지시를 내리고, 세계 각국에는 한국을 국제법까지 어긴 나라로 매도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일본에 강제징용돼 노역에 시달리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 4명에게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이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곧바로 이에 반발하는 성명을 일본어와 영어로 냈다. “일한 우호협력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집는 판결로 극히 유감이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 JP뉴스의 유재순 대표는 14일 MBC 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을 통해 일본 정부의 전방위적인 대응 현황을 전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신일철주금에 “‘한국 측에 일체 대응하지 말라. 정부가 시키는 대로 따르라’는 배상금지 가이드라인을 냈다는 보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아랍권까지 일본 대사관과 영사관 등 재외공관에 일본 정부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도록 훈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며 “일본 정부의 주장을 현지 언론에 기고하라는 지침도 내렸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이렇다. ‘강제징용 피해 배상은 이미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 국제법에 기초해 한국 정부와 맺은 협정을 한국 대법원이 마음대로 뒤집는다면 어떤 나라가 한국 정부와 손잡고 일하겠느냐’는 내용이다. 일본은 이를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로 번역해 일본 외무성과 재외공관 홈페이지 등에 게재해놓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3일 한일관계 전문가 10여명에게 의견을 들었고, 국무조정실이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민ㆍ관협의체 구성을 검토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피해자 변호를 맡았던 김세은 변호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간 대화가 이뤄져야 신일철주금도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 있다”면서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뀔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일본 전범 기업의 국내 자산을 동결하고 일본 정부에 강하게 항의해야 한다’, ‘독도에 강제징용 노동자상과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자’ 등이 주요 내용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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