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판사 ‘눈빛’ 이규상 대표
30년간 낸 사진책 정리한 책 내고
사진가들 대표작 원판 전시 열어
“진실은 구체적이다, 독일 작가 브레히트의 말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입니다. 사진이야말로 브레히트 말에 가장 잘 어울리니까요.”
12일 사진전문출판사 눈빛 설립 30주년을 맞은 이규상(58)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예술사진이 아니어서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집만 집중적으로 내왔다. 문학 못지 않게 시대를 기록하는 사진이 좋아서였다.
첫 작품은 프랑스 작가 크리스 마커의 1958년작 ‘북녘사람들’. 오래된, 동시에 유명한 사진집이었지만 적잖게 긴장도 했다. ‘북한’이라면 민감하게 여길 1980년대 말에 책을 출간해서다. 과연 책을 내고 나니 정보과 형사들이 출판사로 쑥 밀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한 때 ‘요시찰 출판사’로 분류됐다는 건 나중에 알기도 했다. 다행히 곤욕을 치른 적은 없다. “제가 ‘작품은 작품일 뿐’이라고 엄격하게 선을 그었거든요.”
이렇게 개화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미군정 시기는 물론, 뜨거웠던 민주화 시대까지 모두 사진으로 정리하면서 책을 펴냈다. 종수로는 700종에 이른다. 큰 돈은 안되니 출판해서 이익이 남으면 그 이익을 다시 다른 책 출판에 쓰는 식으로 운영했다. 30주년 기념으로 이 책들을 정리한 ‘지금까지의 사진-한국사진의 작은 역사 1945-2018’을 내놓은 데 이어, 20일까지 서울 역삼동 스페이스22에서 기념전도 연다. 눈빛이 낸 사진책 모두를 내보인다. 대표 사진가들의 대표작들을 원판으로 내건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다큐 사진만 하리라 작정했던 건 아니었다. 예술사진과 달리 기승전결 스토리가 담긴, 그 안에 메시지가 담긴 다큐 사진이 출판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다큐 사진집을 계속 만들면서 차차 사명감이 생겼다. “개별 작가나 작품을 들여다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이 시대를 기록한다’는 의식이나 책임감은 분명했어요. 그런데 그걸 정교한 언어의 사진이론, 사회의식으로 풀어내질 못했어요. 뭐랄까, 내적으로 정리가 안됐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더더욱 작품들을 정확하게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 대표가 브레히트 말을 끄집어 낸 건 ‘자부심’ 못지 않게 ‘아쉬움’이 더 크다는 의미다. 뜨거웠던 한국 현대사를 기록하는 데 사진도 큰 역할을 했으나 ‘작가’나 ‘화가’는 이렇게 저렇게 이름을 남기지만 그만한 이름을 얻은 ‘다큐 사진가’는 없다. “우리가 겪은 20세기의 고난과 참상을 사진만큼 명백하게 보여주는 게 어디 있나요. 그리고 ‘고난 속의 연대’를 사진만큼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더 있나요. 그런데 언론, 출판, 교육 여러 영역에서 사진을 너무 외면해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해외에까지 가서 사진을 제대로 배웠다는 이들이 생겨나도 이들은 멋진 사진만 찍는데 관심 있을 뿐 우리 현실을 기록하는 데는 무관심하다. “막상 해외에선 골목 안 풍경이나 시장처럼 정말 한국적인 사진을 원하는데, 다들 해외 사진처럼 찍죠.”
30주년 이후 목표는 그래서 ‘20세기 한국 사진 역사’를 정리하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진’ 책을 묶어내면서 80여명의 사진가 소개, 리뷰 등을 한데 실은 것도 이 때문이다. K팝처럼 K포토 붐이 일어나길 바란다.
한 때 끙끙 앓았지만 지금은 가벼운 마음이다. “한 20년차 정도까지만 해도 제 스스로 사명감에 넘쳤던 것 같아요. 이 어려움을 뚫고 어떻게든 해나가리라는 결심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제가 좋아서 한 일 같아요. 소규모 출판사 사장의 필수적 능력이라는 ‘은행대출’에 능한 것도 아닌데 결핍을 감수해가면서도 책을 계속 낸 것, 저 좋은 일을 그냥 그렇게 했었던 사람이 있었다고만 생각해주시면 고맙지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