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유가 폭락 견디다 못해
“다음달부터 하루 50만배럴 감산”
OPEC도 다음달 감산 합의할 듯
美 이란산 석유 수입 제재 맞물려
러시아산 원유 수요 증가 전망
이미 유럽 정유사들은 물량 대체
11월 석유값 폭락을 이기지 못한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일방적 감산을 선언했다. 대(對)이란 제재 복구에도 예상과 달리 유가가 계속 떨어지는 데 대응한 결정이다. 이란산 석유의 수출길이 막히고 사우디마저 감산에 나설 경우 원유 시장에서 러시아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회원 주요 산유국의 장관급 공동점검위원회(JMMC)에 참석한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산업에너지광물부장관은 회의 결과와 관계없이 “다음달부터 하루 50만배럴의 원유를 감산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우디의 결정은 11월 들어 국제 유가가 예상과 달리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산 브렌트유의 가격은 10월 초 배럴당 86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이달 들어 73달러대까지 떨어졌고,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격은 34년 만에 처음으로 10거래일 연속 하락을 기록하며 한때 배럴당 60달러 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미국의 이란 석유 제재에 한국을 비롯한 8개국이 유예를 적용받으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해소된데다, 중간선거 종료 후 미국의 압박이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비록 OPEC과 비회원 주요 산유국이 공식 합의하지는 못했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대세는 감산 쪽이다. 오만의 무함마드 빈 하마드 알룸히 석유장관은 “2019년에는 과잉 공급이 있을 것이란 공감대가 잡혔다”라며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JMMC 회의에선 감산 합의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하일 마즈루이 UAE 석유장관도 “뭐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데 최소한 증산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우디와 더불어 양대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의 태도는 애매하다. 최근 석유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고 있기 때문에 감산에 회의적이지만, 그간 산유국 회의 결정에 보조를 맞춰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흐름을 따라갈 가능성도 있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석유장관은 이날 “산유국이 감산에 합의하면 그 결정에 따를 것”이라면서도 “현재 러시아의 석유 생산량은 일정 수준으로 안정돼 있고, 그 수준 내에서 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감산 결정은 결국 러시아의 힘을 더욱 키우는 모양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을 봉쇄하며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중동 산유국들이 대거 사우디의 감산에 동조한다면 러시아산 원유 수요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5일부터 시작된 미국의 이란산 석유 수입 제재로 인한 이득도 러시아가 보고 있다. 이탈리아의 에니와 사라스, 프랑스의 토탈 등 유럽 정유기업이 러시아산으로 수입 물량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 터키도 러시아산 수입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러시아는 여기에 이란산 원유를 하루 10만배럴씩 물물교환 형식으로 사들이면서 이란의 생명줄 역할까지 자처하고 있다. 들여온 이란산 원유는 국내 소비용으로만 쓰고 대신 자국산 수출 물량을 늘리겠다는 것으로, 이란과의 관계도 유지하고 수출이익도 더 보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셈이다. 8일 러시아 국영 로스네프트사는 2018년 9개월간 총 4,510억루블(약 68억달러)의 수입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다.
다만 미국의 대 러시아 제재가 러시아 석유기업으로까지 확장될 경우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9일 로이터통신은 로스네프트ㆍ가스프롬 등 러시아 석유기업들이 서방 기업들과의 거래 협상에서 ‘지불 실패시 손해배상’ 조항 추가 또는 달러화 대신 유로화로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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