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을 늘리려던 기존 입장을 뒤집어 줄이기로 방향을 틀었다. 줄곧 보조를 맞추던 미국과 엇박자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이 아부다비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장관급 회의에 앞서 “석유 수요 감소에 따라 내달부터 하루 50만 배럴을 감산하겠다”고 밝힌 내용을 전했다. 사우디는 5일 이란 제재 발효에 앞서 국제유가를 안정시키려는 미국의 압력에 따라 “원유 생산을 하루 100만 배럴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불과 한 달도 안돼 뒤집은 것이다.
사우디는 국제유가 하락추세와 향후 전세계 경제의 성장률 둔화로 원유 감산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알 팔리 장관은 회의에서도 “시장의 심리는 공급 부족이 아닌 과잉 공급을 우려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사우디의 원유 생산은 하루 평균 1,070만 배럴 규모로 미국, 러시아에 이어 3위 수준이다. 내달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장관급 회의에서 다른 회원국들이 사우디의 감산조치에 동참할 경우 유가는 다시 가파르게 오를 수도 있다.
당장 미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사우디가 원유 생산을 줄여 유가가 치솟으면 가뜩이나 이란 제재에 불만이 많은 유럽 등 전세계 각국이 미국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 역풍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카슈끄지 살해 사건으로 미국에 고개를 숙였던 사우디가 원유를 무기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다.
러시아도 사우디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FT는 러시아 석유회사들은 일일 30만 배럴 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와 반대 입장이다. 이란이 원유 수출 금지에 묶여있는 틈을 타 재미를 보려다 틀어지게 생겼다. 러시아는 2016년 이후 사우디와 원유 생산에 공동으로 대응해왔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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