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실로 의사 3명이 구속된 사건에 대한 의사집단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인근에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열고,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행위에 의한 것을 제외한 의료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의료분쟁처리특례법 제정과 함께 의사에게 진료거부권 등을 부여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번 의사들의 길거리 집회는 지난해 12월초 정부의 건강보험 혜택 확대 정책, 즉 ‘문재인 케어’의 철회를 요구한 전국의사궐기대회 이후 약 1년 만으로 주최 측(비대위)은 전국에서 1만 2,000명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발표했다.
의협은 지난달 24일 수원지법이 횡경막 탈장 등으로 숨진 어린이의 진료의사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실형을 선고하고 전원 법정 구속하자 항의의 의미로 삭발시위를 벌인데 이어 이날 전국의사궐기대회를 열어 반발수위를 한층 높였다. 의협은 전국의사총파업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의료과실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
최근 영업사원의 대리수술로 환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의사들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협은 이번 사건에 대해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의협의 과거 과격한 행보에 불편해 했던 의사들마저 이번 행보에는 암묵적 동조를 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는 의사들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의료과실’의 형사 책임문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수 의사들의 의견이다.
실제 현 최대집 의협회장에 대해 “너무 과격하고 일방적”이라며 신뢰를 보내지 않았던 대학ㆍ종합병원 봉직의들도 이번 집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지방의 모대학병원 내과 교수인 박모(48)씨는 “의사가 흔치 않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고의성이 없는 진료 과정의 결과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사들의 마음을 국민과 정치권에 전하기 위해 처음으로 의협 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현대의학의 한계 및 의사 개인의 능력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제대로 진단과정을 밟아도 의료과실은 발생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의사는 신(神)이 아니라 의료과실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종혁 의협대변인은 “진단과정에서 이상소견을 놓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진료 당시 선의를 갖고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 의사들을 법적 구속한 것은 사법부의 폭거”라고 주장했다.
의사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일회성 집회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과실 문제는 개원의, 봉직의 할 것 없이 의사라면 누구나 닥칠 수 있는 문제”라며 “최대집 의협회장이 문재인 케어 등 현안 문제에 제대로 역할을 한 것이 없었는데 이번 사건이 의협 집행부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에서도 이번 사태와 관련한 성명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법부가 의료과실 문제를 형사처벌로 다스리면 이로 인한 피해는 환자들이 고스란히 짊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제시됐다. 복수의 의사들은 “의사들은 형사처벌이 두려워 진단이 어려운 환자는 다른 의사나 병원에 떠넘기고, 그것마저 어려우면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검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이로 인한 모든 피해는 결국 환자들이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 분노에 여론은 냉랭
의사들은 이번 의사 구속 사건으로 모든 의사들이 예비 범죄자가 됐다며 분노하고 있지만 여론의 반응은 정반대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일반국민들은 8세 아동이 4차례 오진을 통해 사망한 사건 자체에 분노하고 있다”며 “사법부 처벌과 관련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가해 집단인 의협이 반성은커녕 집단행위를 하는 것은 국민정서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협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료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자신들이 환자를 선택해 진료를 하겠다는 것으로 국민을 무시한 과도한 요구”라고 비판했다.
이인재 변호사(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대표)는 “지금도 법원에서 의사들이 업무상 과실로 법적 구속을 당하는 일은 흔치 않다”며 “국민과 의사들에게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알려 문제를 해결해야지 지금처럼 선동만 고집하면 의협의 요구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해 결과적으로 관철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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