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배경이 묻어나는 짙푸른 청록색 위에 금색 땡땡이가 둥실둥실 부유한다. 액자처럼 두른 은색의 테두리는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11년 만에 대규모 개인전을 여는 이영희(71) 작가가 이번에는 금색 점을 그려 넣은 회화를 새로 선보인다. 금색 점들은 청록색, 자주색, 파란색 등 깊은 색감의 바탕을 환히 밝혀준다. 때로 테두리로 자리를 옮기면서 재미를 더한다.
전시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만난 이영희 작가는 “이번 시리즈는 동 트기 전의 새벽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며 “금색 점은 새벽에 떠 있는 달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어두운 새벽에 뜬 달이기도 하고, 새벽이 오면서 달이 지나가는 흔적이기도 하다. 금색 점들은 불규칙하게 작품에 등장한다. 하나만 둥실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 개가 이어지듯 자리한 작품도 있다. 작가는 “달이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듯이, 작품 내에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달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금색 점이 돋보이는 것은 짙은 바탕 덕이다. 단색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색을 섞어 층층이 쌓아 올린 결과다. 가령 진한 청색 위에 청색 계열을 칠하고, 청록색도 겹겹이 칠한다. 작가는 “깊이감을 주려고 수많은 색을 쌓고 칠했다”며 “색을 섞다 보면 너무 아름다워 먹고 싶어질 때도 있다”고 웃었다. 여러 색을 쓰기 위해 질감이 가벼운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지만 유화처럼 보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가 쓰는 색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금색, 은색, 옥색 등은 회화에서 쉽게 접하기 어렵다. 작가는 “2007년에 우연히 파리를 들러 궁전을 봤는데, 금색과 은색, 옥색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촌스럽다 여기는 색의 재발견이었다”고 했다. 유럽 궁전의 색은 새벽의 이미지와 만난다. 작가는 “미국 작가 헨리 나우엔의 책 ‘새벽으로 가는 길’을 감동 깊게 읽었는데, 새벽과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들은 넓은 사각 면에 색을 올렸지만 이 작가의 과거 작품들은 기하학적인 선이 많았다. 그는 “나이를 먹으니깐 가장자리에 선을 묻어두게 됐다”라며 “대신 깊이 있게 색을 쫓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오히려 더 잔잔해졌다. 박영택 미술평론가(경기대교수)는 “이영희 작가의 그림은 미묘한 색채로 충만하고 순수하고 단순하다”라며 “단순하고 소박함 사이에서 빛나는 그림은 지상의 꽃처럼, 바람처럼, 달처럼 고요하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이달 28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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