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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곁엔 항상 음악이 있고, 항상 서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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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곁엔 항상 음악이 있고, 항상 서로가 있다

입력
2018.11.10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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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투병 전태관 위해 헌정 앨범 내는 김종진 

 후배들 제안으로 프로젝트 시작 

 윤종신 윤도현 십센치 등 참여 

 리메이크 앨범 내달 발매 예정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태관(왼쪽)과 김종진은 36년 지기다. 그런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림자 같은 존재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태관(왼쪽)과 김종진은 36년 지기다. 그런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림자 같은 존재다.

30년을 같이 산 부부 중에서도 첫 만남 날짜까지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1982년 12월 24일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 올해 데뷔 30년을 맞은 록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기타리스트인 김종진(56)은 드러머인 전태관과의 첫만남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기업 입사하려던 전태관 마음 돌려 만든 앨범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음악카페 시나브로. 가수 문관철이 운영하던 카페에 김광민, 한상원 등이 모여 있었다. 김종진이 활동하던 록밴드 엑시트에서 드럼을 쳤던 전필립(현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이 미국 유학을 앞둬 만들어진 자리였다.

전필립은 이 자리에서 드러머 후임으로 전태관을 추천했다. “처음엔 관객인 줄 알았어요.” 대학 인근 카페에서 DJ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자유분방한 김종진의 눈에 전태관은 ‘귀공자’로만 보였다. 전태관에 대한 선입견은 그가 드럼 스틱을 잡은 뒤 바로 깨졌다고 한다.

“‘연주 좀 해봐’라고 했더니 바로 드럼 쪽으로 가더라고요. 뒤에서 드럼 소리가 나는 데 깜짝 놀랐어요. 연주가 엄청 정확하고 힘이 넘쳤죠.” 김종진의 말이다. 동갑내기였던 두 사람은 빠르게 친해졌다. 김종진은 1985년 대기업 입사원서를 쓴다는 전태관의 마음을 돌려 1988년 봄여름가을겨울 1집을 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은 학창 시절 '괴짜'였다. 교복도 특대호로 사 입고 멋을 냈다. 김종진의 친구들은 그를 '스프링'이라 불렀다고. 김종진의 걸음걸이가 스프링처럼 통통 튀어서다. "어려서부터 리듬을 타며 걸었죠, 하하하". 배우한 기자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은 학창 시절 '괴짜'였다. 교복도 특대호로 사 입고 멋을 냈다. 김종진의 친구들은 그를 '스프링'이라 불렀다고. 김종진의 걸음걸이가 스프링처럼 통통 튀어서다. "어려서부터 리듬을 타며 걸었죠, 하하하". 배우한 기자

 “전태관 투병, 링에 선수 올려 놓은 심정” 

그로부터 30년 후. 김종진은 요즘 부쩍 외롭다. 인생의 반을 무대에서 함께 한 전태관이 투병 중이라서다. 2012년 신장암 수술을 받은 전태관은 암세포가 뇌와 척추 등으로 전이돼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김종진은 며칠 전에도 친구를 보고 왔다고 했다. 힘든 상황이지만 어려서부터 동고동락한 만큼 두 사람 사이에 심각함은 낄 자리가 없었다. 두 사람이 이날 나눈 대화의 주제는 미국에서 두 달간 밥처럼 먹었다는 치킨 얘기였다. 1992년 3집 ‘농담’ 녹음을 할 때 일이다. 김종진은 전태관이 매운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해 ‘엽기 떡볶이’도 병실로 사 갔단다. 겉으론 웃지만 김종진은 늘 조마조마하다.

“태관이가 어깨뼈에 암세포가 전이돼 수술을 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어요. 링에 선수 올려 보내고 밖에서 지켜보는 감독의 심정이죠. 하지만 태관이 이겨 낼 거리 믿어요. 지금까진 암세포와 잘 싸워서 백전백승했으니까요.”

김종진은 병상에 누운 친구를 위해 ‘일’을 벌였다.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이란 프로젝트다.동료 및 후배 음악인들이 짝을 이뤄 봄여름가을겨울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헌정 음반 제작이다. “내 곁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 이젠 내 차례야.” 김종진은 8집에 실린 ‘땡큐송’을 스윗소로우 등과 다시 불러 캠페인송도 냈다. 전태관의 부인이 지난 4월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가수 김현철과 윤종신 등이 건강이 무너진 전태관의 야윈 모습을 보고 “음악으로 돕자”고 먼저 김종진에게 제안했다. 주위의 따뜻한 손길에 김종진도 놀랐다

“지금까지 음악을 해 온 게 ‘다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후배들 보면서 ‘여태 내가 이룬 게 다 (세상이) 도와준 거구나’란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요.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수익금은 태관이 치료비로도 지원할 예정이지만 앞으로도 이 프로젝트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배우 황정민(왼쪽)이 함춘호의 기타 연주에 맞춰 봄여름가을겨울의 ‘남자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
배우 황정민(왼쪽)이 함춘호의 기타 연주에 맞춰 봄여름가을겨울의 ‘남자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

 윤종신 황정민 등 참여한 우정 프로젝트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엔 뜻밖의 손님도 찾았다. 배우 황정민이다. 그가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작업한 ‘남자의 노래’는 11일 공개된다. 황정민이 영화 OST가 아닌 분야에서 직접 노래해 음원을 내기는 처음이다. 김종진과 황정민의 두 배우자가 다리를 놔 성사됐다. 평소 좋아했던 밴드를 위해 용기를 낸 황정민은 한 곡 녹음에 5시간을 쏟아 부었다. 김종진은 “황정민의 목소리가 김현식과 김광석의 목소리를 합쳐 놓은 것처럼 좋아 정말 놀랐다”고 작업 뒷얘기를 들려줬다. 11일엔 ‘남자의 노래’와 함께 윤종신이 베이시스트인 최원혁과 만든 ‘첫사랑’도 발표된다. 앞서 밴드 혁오의 오혁과 이인우는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면’을, 윤도현과 정재일은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새롭게 편곡해 공개했다. 가수 십센치와 프로듀서 험버트는 리듬앤블루스(R&B) 스타일로 ‘언제나 겨울’을 선보여 봄여름가을겨울 음악에 새 옷을 입혔다. 앞으론 장기하와얼굴들의 장기하와 전일준을 비롯해 어반자카파와 에코브릿지 등이 작업한 곡이 추가로 나온다. 이 곡들을 엮은 앨범은 다음달 20일 발매될 예정이다.

1980년대 활동했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이 밴드에서 김종진(오른쪽 두 번째)은 기타를, 전태관(오른쪽 첫 번째)은 드럼을 연주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0년대 활동했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이 밴드에서 김종진(오른쪽 두 번째)은 기타를, 전태관(오른쪽 첫 번째)은 드럼을 연주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환절기’ 멤버로 불렸던 유재하 

봄여름가을겨울은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란 백밴드로 출발했다. 김종진과 전태관이 유재하(건반), 장기호(베이스)와 합주한 게 시작이었다. 유재하가 팀을 떠난 뒤엔 박성식이 들어와 빈자리를 채웠다. 박성식과 장기호는 나중에 밴드를 나가 빛과 소금을 꾸렸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연주자의 요람’이었다. 윤상을 비롯해 정재일도 봄여름가을겨울과 인연이 깊다. 김종진은 “윤상은 밴드 초창기 공연 준비할 때 ‘너무 힘들다’며 도망갔다”며 웃었다. 유재하는 봄여름가을겨울 ‘환절기 멤버’로 불릴 만큼 두 사람과 각별했다. 유재하는 전태관과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세 사람은 학창 시절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인근 외국 서적 파는 곳에 가 기타 악보 사는 게 공통된 취미였다. 김종진은 조용필과 위대한탄생 출신이기도 하다. 김종진은 “조용필과 위대한탄생 멤버로 활동했던 건 축복이었다. 조용필 선배님이 노래방 가는 걸 참 좋아해 함께 갔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오기까지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어떤 이의 꿈’). 봄여름가을겨울은 1980년대 후반 ‘이방인’이었다. 세기말의 허무를 뿌연 안개처럼 노래하며 퓨전재즈란 낯선 장르로 ‘X세대’의 큰 사랑을 받았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록밴드 백두산이나 시나위와 결이 달랐다.

계절이 변하듯 그들의 음악도 삶의 궤적을 따라 변했다. “나는 아웃사이더”(‘아웃사이더’)라 외친, 날 선 청년은 어느덧 중년이 돼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며 삶을 예찬했다. 중년의 서사를 찾기 어려운 대중음악에서 단비 같은 시도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인생엔 ‘살’이 붙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론 누구가에겐 단층처럼 켜켜이 쌓일 시간이 기다려진다. 봄여름가을겨울이 그랬다. 김종진과 전태관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 뮤직비디오를 헝가리의 고성에서 찍었다. 곡 녹음도 이곳에서 했다. 곡이 나온 지 16년 뒤에 원곡자가 들려준 독특한 창작 과정의 이유는 이랬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전쟁의 흔적이 있는 고성에서 라이브로 녹음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삶이 전쟁이잖아요. 다 허물어진 성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터져나오면 허물어진 삶에서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걸 대중이 화답해준 거죠.”

2000년대 중반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과 전태관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0년대 중반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과 전태관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종진이 머리가 센 이유 

봄여름가을겨울의 30년은 모험의 연속이었다. 이들은 1집에 연주곡을 세 곡이나 넣었다. 대중 음악에선 파격적인 시도였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어” 한 일이었다. 이들은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에서 음반 녹음을 시도했다. 당시 음반 제작비로 2억 5,000만원을 썼다. 김종진은 “미국에서 작업하며 고생해 머리가 세기 시작했다”며 웃었다.

노래 대신 낭독 파트를 곡(‘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에 넣기도 하고 역시 국내 최초로 CD 케이스를 깡통 형식(6집 ‘바나나 셰이크’)으로 제작해 파격을 줬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디자인이었다. 음식을 통조림에 넣어 오래 보관하듯 좋은 음악은 수십 년이 지나도 영원할 것이란 의미가 담겼다. 김종진은 “그 앨범은 한 장 제작비만 1만원이라 찍으면 찍을수록 손해였다”고 웃으며 “하지만 음악 팬들에 좋은 콘텐츠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 욕심을 냈다”고 말했다.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음악인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김종진은 9집을 기획하며 뱃고동 소리가 담긴 신곡을 만들었다. 김종진은 봄여름가을겨울을 “음악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으로 비유했다. 그에게 음악은 “항해”다.

“태관이 빠진 봄여름가을겨울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고민을 한 적도 있죠. 그러면서 ‘우리 목적지가 저기다, 다 왔으니 기운 내자’라는 취지로 곡을 만들었죠. 제가 해군 출신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봄여름가을겨울이 저와 태관이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가 계속 이어갔으면 해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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