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럽고 두렵다. 자라면서 학교와 가정에서 배운 것을 통해 청소년기에 정립된 가치관은 그 이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에 방향성을 제공해주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 주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내비게이션이 먹통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유하고 지켜온 존재 목적과 행동 양식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껏 배우고 경험한 많은 것들을 부정해야만 오늘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반공교육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마을운동이 이미 조롱거리가 된 것은 차치하고라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성장을 위한 경쟁조차 죄악시되는 오늘의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비게이션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니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는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경제는 서서히 수렁에 빠지고 있다.
공직자들도 기업인들도 무엇 하나 의사결정 하기가 쉽지 않다. 최선을 위한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적폐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저 눈치만 보며 머뭇거리는 동안 4차 산업혁명의 물결과 함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무장한 해외 경쟁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가며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공직자들의 모호한 태도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킨다. 기업의 투자가 배제된 일자리 창출과 경기 회복은 기대하기 힘들다. 시장의 경쟁력은 지속 가능성에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영속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5,0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우리에겐 역사가 없다. 그저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의 과거는 부정하고 현재를 위해 재해석되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조직은 수장이 바뀔 때마다 부침을 겪는다. 심지어 조직이 존재하는 한 지켜내야 할 사명과 추구해야 할 비전조차도 수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로부터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보다는 과거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은 늘 정의로 포장된다.
맡겨진 위치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자신의 가치관이 절대선이라는 신념 속에 구성원의 가치관까지 일시에 바꾸어 놓으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치관은 관념적으로 정의될 수는 있지만 단기간에 형성되거나 바뀌기는 힘들다. 기존의 가치관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경우에도 오랜 시간을 통해 이미 형성된 가치관은 대부분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허물이 있는 과거일지라도 과거를 인정하고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형성된 구성원의 가치관을 존중하면서 전략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다양해지는 구성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사회의 파편화는 가속화되어 갈 것이다. 가속화되는 파편화 과정에서 사회의 다양성을 담아내고 그 다양성을 통해서 또 다른 성장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한데 묶어줄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역사와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가치관이다. 하지만 우리는 편을 나누어 역사를 달리 해석하고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서로의 역사를 부정하고 문화를 비판한다.
영광도 과오도 우리의 과거고 역사다. 과거를 부정하고 비판하기보다는 과거를 인정하고 용서하자. 그래야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독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처를 지우기 위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독단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성장에 대한 구성원의 동기를 꺽을 것이다. 독단에서 벗어나야 영속성을 가지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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