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만대 혜택 폐지, 2030년 공공 퇴출… 경유값 조정 없어 한계
내년 2월부터 미세먼지 기승 땐 민간도 ‘차량 2부제’ 의무화
정부가 이른바 ‘클린디젤’ 정책을 공식 폐기하고 미세먼지 주범인 경유차의 단계적인 퇴출에 나선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저공해 경유차인 ‘클린디젤차’를 환경친화적 자동차 범주에 포함하면서 각종 혜택을 제공한 지 10년만이다. 정부는 8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56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비상ㆍ상시 미세먼지 관리강화대책을 발표했다.
◇95만대 경유차 인센티브 폐지… 2030년 공공부문 경유차 제로
정부는 미세먼지 원인물질을 줄이는 상시 저감대책으로 클린디젤 정책을 공식 폐기한다고 밝혔다. 참여정부에서 경유 승용차 판매를 허용한 데 이어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저공해 경유차를 친환경차에 포함시키며 주차료ㆍ혼합통행료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클린디젤 정책을 도입했다. 당시 생산과 판매를 독려한 탓에 지난해 말 현재 국내 경유차 비중은 42.5%에 달한다. 하지만 2015년 배출 가스 조작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폭스바겐 사태’ 이후 ‘클린디젤’ 기술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무너졌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저공해 경유차 인정기준을 삭제하고 과거 저공해 자동차로 인정받은 경유차 95만대에 부여하던 인센티브를 폐지한다. 이들 차량 운전자들은 법 개정이 이뤄지는 내년 상반기부터는 공공주차장 이용료와 혼잡통행료를 각각 50% 할인받는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 전망이다. 또 우선 공공부문부터 경유차를 감축해 나가기 위해 친환경차 구매비율을 2020년까지 100% 달성하고 2030년에는 공공부문 경유차를 제로화하기로 했다. 다만 자영업자 등의 경유차 이용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노후 경유 트럭을 폐차하고 액화석유가스(LPG) 1톤 트럭을 구매하는 경우 기존 보조금(최대 165만원)에 추가로 400만원을 지원한다.
민간부문의 경유차 역시 단계 퇴출 수순을 밟는다. 정부는 내년 2월 경유차 감축 로드맵을 수립해 노후경유차 퇴출, 신규 경유차 억제, LPG차 사용제한 폐지 등의 세부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비상저감조치 발령 늘리고 민간으로도 확대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시 발령되는 비상저감조치의 대상은 늘리고 조건은 완화한다. 내년 2월 15일부터는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 부문도 의무적으로 비상저감조치에 참여하도록 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민간 부문에서도 차량운행 제한과 배출사업장, 공사장 조업단축 등을 의무적으로 이행하게 된다. 수도권 공공부문은 비상저감조치 발령 가능성이 높은 경우 도로청소, 차량 2부제 등 예비저감조치를 시행한다. 발령요건도 당일 일시적 고농도이고 다음날 고농도가 예상될 때 또는 다음날만 나쁠 때도 발령 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지금보다 더 자주 발령되도록 한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가동 중지(셧다운) 대상도 조정한다. 봄철(3~6월) 셧다운 대상을 현재처럼 30년 이상 노후 발전소가 아니라 실제 배출량이 많은 곳 중심으로 선정한다. 이에 따라 내년 3~6월에는 30년 이상 노후 발전소인 삼천포 1ㆍ2호기 대신 단위배출량이 3배 가량에 달하는 삼천포 5ㆍ6호기의 가동이 중단된다. 현재 수도권에서 시행중인 가정용 저녹스(低NOx) 보일러 보급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해, 가정용 보일러를 저녹스 보일러로 바꿀 경우 대당 16만원의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중국 등 국외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대책은 뾰쪽하게 담기지 못했다. 중국 지방정부와 협력 사업을 확대한다는 원론적 내용이 전부였다.
◇반복 정책에 불과… 경유차 소비자 반발도
이 같은 종합 세트식 미세먼지 대책에 대한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전문가들은 인센티브 폐지만으로는 경유차를 퇴출시키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운전자들이 수백만원을 더 주고 경유차를 사는 건 인센티브 때문이 아니라 기름값 때문이라는 것이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인센티브 폐지는 경유차 소유주들이 차를 바꿀 때 구매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은 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면서 “궁극적으로 경유와 휘발유 값 조정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장도 “클린디젤 폐기는 실효성이 있다기 보다 선언적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경유차 전면 퇴출이 공공 부문에 제한되고, 이미 경유차 모델을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라 당장 큰 영향은 받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기존 정부 정책을 믿고 경유차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잔뜩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저공해자동차로 인증 받은 2012년식 BMW 520d를 소유한 김모(38)씨는 “애초에 잘못된 정책을 만든 책임을 정부도 져야 한다”며 “기존 차량 소유자까지 혜택을 없애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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