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출 규제로 가계부채 증가율이 최근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소득 증가율과의 격차는 오히려 더 커진 것으로 드러났다. 가계 빚 증가를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단 낮추겠다는 정부 목표가 무색해진 셈이다. 더구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선 가계부채가 늘면 집값도 동반 상승하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은행은 8일 이 같은 내용의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한은은 올해 마지막 금리결정 회의(30일)를 앞두고 펴낸 이번 보고서에서 향후 통화정책 결정에 고려할 사항으로 △금융불균형 △미중 무역분쟁 △근원물가 동향 등 세가지를 꼽았다.
한은은 우선 금융불균형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 특히 유념해야 할 사안으로 가계부채를 꼽았다. 실제로 가계부채 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은 재작년 4분기 10.1%에서 올해 2분기 7.7%로 계속 하락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의 효과다. 그러나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소득 증가율을 여전히 웃돌고 있는 데다 그 격차는 최근 오히려 더 확대되는 양상이다.
가계부채 증가율과 명목 성장률의 차이는 지난해 3분기 1.3%포인트까지 급락했지만 이후 반등해 올해 1분기 4.4%포인트, 2분기 4.2%포인트 수준으로 넓어졌다. 보다 실질적인 국민소득 추이를 보여주는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도 가계부채와 소득 증가율 차이는 지난해 3분기 1.5%포인트까지 좁혀졌다 올해 2분기 4.2%포인트로 도로 커졌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둔화됐다지만 소득 증가율은 그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진 결과다.
더구나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특히 서울에선 상관 관계가 매우 밀접했다. 2009년 이후 지역별로 가계대출과 아파트 가격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 가계대출과 아파트 값의 상관계수는 0.7이나 됐다. 상관계수가 1이면 완전한 비례 관계임을 뜻하는데, 0.7이면 가계대출 증가와 집값 상승이 함께 가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경기 지역도 상관계수 값이 0.6으로 높았다. 보고서는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가 상호 영향을 미치며 금융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어 “미중 무역갈등이 무역 또는 불확실성 경로를 통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간 미중 무역분쟁이 끼칠 악영향에 대한 한은의 전망 가운데 가장 단정적 어조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양국 교역이 위축되면서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중간재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중 수출의 78.9%가 중간재이고 중국은 수입 중간재를 수출품 생산에 사용하는 비중(28.7%)이 매우 높아, 중국의 수출 감소가 고스란히 우리 수출에 타격을 주는 구조인 탓이다.
한은은 미중 무역갈등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내년에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지난 9월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면서 내년엔 관세율을 25%까지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미국의 대중 관세부과 품목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전자부품, 화학제품 수출의 타격이 예상된다. 보고서는 미중 분쟁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 가계 소비, 기업 투자도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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