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용재의 세심한 맛] 설탕은 나쁘다? 무조건 줄이면 ‘엉뚱한 음식’ 돼요

입력
2018.11.10 04:40
14면
0 0

 올리고당 등 대체 감미료는 백설탕처럼 정확한 맛 못 내 

 적은 양으로 큰 효과 내도록 요리에 적절히 사용해야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된 설탕을 무조건 적게 넣으면 의도한 요리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게티이미지제공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된 설탕을 무조건 적게 넣으면 의도한 요리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게티이미지제공

요즘 ‘푸드 위시즈 (Food Wishes)’라는 유튜브 채널을 다시 즐겨 본다. 드라마 없이 정보와 기술을 배울 수 있어 음식에 관한 콘텐츠, 특히 영상이라면 다큐멘터리보다 요리 시연을 선호한다. 초기의 열악한 장비 탓에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요리하는 손만 보여주며, 음악도 일절 없이 요리법만 더빙으로 담아 10분 안쪽의 짧은 영상을 만든다. 단순함 속에 배어 있는 희망(맛있고도 쉬워요, 한번 해보세요) 혹은 낙관 등을 캘리포니아 억양과 중국어의 성조를 합친 듯한 독특한 말투에 담아, 셰프 존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26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푸드 위시즈에서 한 달 전쯤에 보았던 ‘벌집 토피’의 조리 영상 이야기를 해보자. ‘토피(toffee)’는 녹여 캐러멜화한 설탕에 당밀과 버터 등을 넣어 만든 사탕인데, 이 경우는 베이킹소다를 쓴다. 냄비에 백설탕, 물엿, 꿀과 물 약간을 담고 끓여 설탕이 완전히 녹아 걸쭉해지면 베이킹소다를 섞어 유산지를 깐 틀에 담아 30분 정도 굳힌 뒤 쪼갠다. 베이킹소다의 팽창 효과 덕분에 단면에 벌집 같은 기포의 흔적이 남는다. 

음,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달고나가 떠올랐다. 일단 원리가 똑같다. 녹인 설탕에 베이킹소다를 더하면 열에 반응해 부풀어 오른다. 갈색의 뜨거운 반죽은 꾹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동시에 한가운데에 틀로 모양을 낸다. 허리가 잘록한 열쇠 구멍 같은 모양을 깨끗하게 떼어내면 보너스를 받는다. 재료와 두께, 생김새로 보아 모양을 살려 떼어내기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지만 가끔 성공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재주가 전혀 없었고 그저 명찰의 안전핀 등이 효과적이라고만 들었다. 이런 일종의 도박이 대세였지만 ‘오마카세’처럼 특별 주문하는 메뉴도 있었다. 거품이 끓어 오르는 설탕 반죽을 도톰하게만 누른 뒤 가운데에 설탕 한 작은 술을 넣고 만두처럼 반으로 접어 준다. 가볍고 바삭하고 씁쓸하고 달콤하다. 이름도 그럴싸한 벌집 토피와 사실 같은 음식이었다.   

요리 동영상 ‘푸드 위시즈’에 등장하는 ‘벌집 토피’. 유튜브 캡처.
요리 동영상 ‘푸드 위시즈’에 등장하는 ‘벌집 토피’. 유튜브 캡처.

 요리의 핵심 재료, 설탕 

설탕의 물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사설이 유난히 길었다. 물에 더하거나 가열하면 설탕은 녹아 걸쭉한 액체로 변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설탕은 가루지만 축축한 재료로 분류되어 마른 재료인 밀가루의 대척점에 선다. 체중 증가나 지방 축적을 통한 건강 악화의 주범으로 자리를 굳힌 현실에서 설탕의 물성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몸에 나쁘니 안 먹으면 가장 좋고, 아니더라도 가능한 적게 먹어야 한다. 그렇게 강박에 사로 잡히다 보니 엉뚱하게 단맛이 핵심인 빵과 과자류가 희생양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레시피에서 설탕의 양을 무조건 깎으면 건강한 과자와 빵이 된다는 오해 말이다. ‘절반으로 줄였는데 전혀 문제 없이 맛있어요’라는 요리 후기를 볼 때마다 좌절한다. 개인이 임의로 만든 레시피라면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요리책 등 유료 콘텐츠에서 제시하는 레시피는 원칙적으로 실험과 조리를 수없이 되풀이해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핵심 재료의 양을 극적으로 줄여 버리면 레시피를 짜면서 의도한 음식과 전혀 다른 결과가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설탕을 줄이면 그만큼 수분도 줄어 드는 탓에 덜 단 대신 푸석푸석해진다.

설탕은 가루지만 마른 재료가 아니다. 물에 넣거나 가열하면 액체로 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설탕은 가루지만 마른 재료가 아니다. 물에 넣거나 가열하면 액체로 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한식의 짠맛 상쇄해주는 설탕 

이는 설탕을 둘러싼 많은 오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8월 중순부터 격주로 여섯 차례에 걸쳐 ‘세심한 맛’에서는 익숙하다고 믿지만 낯설거나 잘 모르고 쓰는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왔다. 설탕은 한국의 식문화에서 좋든 나쁘든 중요한 역할을 맡아 상시 쓰이는 식재료이고 낯설지도 않다. 하지만 코너의 제목처럼 ‘세심하게’ 쓰이지는 않으니 오해를 풀 자리를 마련해보자. 앞서 언급했듯 설탕은 가루이지만 마른 재료가 아니다. 녹이면 걸쭉해지므로 음식의 수분 혹은 촉촉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를 바탕으로 설탕의 세계를 둘로 나눠야 한다. 바로 짠 음식과 단 음식이다. 짠 음식이라면 말 그대로 짠맛 위주일 텐데 왜 단맛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까? 그게 바로 한식의 세계에서 설탕이 안고 있는 모순 혹은 아이러니이다. 끼니 음식은 짠맛 위주여야 물리지 않는데 현재 우리의 음식에는 단맛이 일상적으로 그것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런 반찬을 탄수화물이라 기본적으로 단맛을 지닌 밥과 함께 먹는다. 말하자면 짠맛보다 단맛으로 간을 맞추고, 좀 더 정확하게는 단맛에 단맛을 겹쳐 먹는 셈이다. 

결국 단맛 자체가 문제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가느다란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메시지를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잠깐 맡자면 설탕의 자리는 한식에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양념과 그 핵심인 고추장, 된장, 간장의 텁텁한 끝맛을 상쇄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강렬한 냄새와 자극, 감칠맛이 맞물려 일정 수준 재료의 단점도 가려준다. 따라서 이런 용도로 설탕이 한식의 세계에 자리 잡은 건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설탕이 귀했던 시절에 처음 설탕을 썼던 과거 세대가 대중화 이후 점차 양을 늘리면서 지금처럼 넘쳐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한식이 현재와 같은 장류 바탕의 양념을 고수하는 한 설탕의 적극적인 개입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설탕의 자리를 인정하고 다음 단계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 설탕을 다른 감미료로 대체할 수 있다는 오해 말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모든 설탕이 같지 않아서 설탕 같은 설탕은 백설탕뿐이다. 설탕이 ‘위험한’ 식재료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피해가려는 시도가 많다. 불고기에는 양파나 배를 갈아 쓰고, 다른 요리에는 ‘더 건강하다’는 올리고당이나 심지어는 매실청 등을 쓴다. 단맛을 둘러싸고 모두가 애를 쓰는 현실이지만 가장 중립적이고도 정확한 맛을 주는 감미료는 좋든 싫든 백설탕이다. 비정제 설탕은 영양소가 더 많아서 좋다거나 올리고당이 더 건강하다는 등 설탕과 감미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장은 대체로 근거가 희박하다. 

설탕을 프렌치토스트 위에 톡톡 뿌려주기만 해도 맛과 식감이 색다르다. 게티이미지뱅크
설탕을 프렌치토스트 위에 톡톡 뿌려주기만 해도 맛과 식감이 색다르다. 게티이미지뱅크

 요리에 맛을 더해주는 설탕 

이런 오해를 일단 풀어야 단맛의 세계 전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끼니의 단맛은 줄이되 건강보다는 맛의 개선을 위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설탕, 특히 정제한 백설탕은 맛의 세계에서 대체재가 아님을 숙지 및 인정하고 ‘적절히 쓰기=잘 쓰기’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체 끼니 음식에서 설탕은 물론 단맛의 덩치를 줄여 식후의 음식에 재투자를 해야 한다. ‘재투자’라니 말이 거창하지만 설탕처럼 유일하고도 전지전능한 식재료의 쓰임새가 굳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는 지면에서 서양의 식재료와 조리 방식 혹은 결과를 한식에 응용하는 법을 소개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었지만, 세계적인 식재료이자 한식에서도 너무나 확실해서 지나칠 정도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설탕이라면 반대로 가보자. 서양 음식에서 설탕을 적지만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식을 소개한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영어 표현 가운데 하나인 ‘적은 양으로 큰 효과 내기(a little goes a long way)’에 딱 들어 맞는 예이다.  

첫 번째는 가장 쉬운, 즉 설탕을 그대로 쓰는 경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요리 칼럼 ‘완벽한 프렌치 토스트 굽기’의 예를 소개해보자. 커스터드(계란물)에 담갔다가 팬에 굽는 프렌치 토스트는 대체로 메이플시럽을 끼얹어 단맛과 향, 촉촉함을 더한다. 하지만 칼럼에서는 계란물 만으로 빵을 촉촉히 구웠다고 전제한 뒤 약간의 설탕, 즉 한 자밤 쯤을 솔솔 뿌려 마무리한다. 빵 위에 올라 앉은 설탕 알갱이가 부담스럽지 않은 단맛의 액센트를 주는 한편, 특유의 아삭거림으로 질감의 대조까지 준다는 일석이조의 발상이다. 프렌치 토스트나 팬케이크는 ‘스폰지 역할을 맡는다’고 할 정도로 메이플 시럽을 축축하게 끼얹어 먹는데, 솔솔 뿌린 설탕이 주는 다른 경험도 매력적이다. 의리상 정녕 메이플시럽을 버릴 수 없다면 프렌치 토스트에 일단 끼얹고 설탕으로 마무리하면 단맛의 일석이조를 확실히 잡을 수 있다.

평범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설탕을 녹인 캐러멜 소스를 뿌리면 레스토랑 디저트를 능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평범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설탕을 녹인 캐러멜 소스를 뿌리면 레스토랑 디저트를 능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음 난이도로는 설탕 시럽이 있다. 조리가 매우 간단하다. 설탕과 물을 무게 대비 1:1로 냄비에 담아 중불에 끓인다. 설탕이 완전히 녹고 시럽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불에서 내린다. 완전히 식힌 뒤 기름병 등에 담아 보관한다. 단맛이 액체 상태로 존재하니 아이스티나 커피 같은 차가운 음료, 집에서 모히토 같은 칵테일에 도전할 때 단맛을 가감하기가 훨씬 편하다. 마지막으로는 약간 난이도가 높은 캐러멜 소스이다. 시럽보다 조금 더 난이도가 높고 설탕을 펄펄 끓여야 하니 약간 위험하다. 따라서 조리용 장갑을 챙기고 만약을 대비해 소매가 긴 옷을 입는다. 중심이 잘 잡힌 우묵한 냄비에 설탕(350g), 물(120ml), 물엿(60ml)을 담아 중불에서 젓지 않고 끓인다. 6~8분 뒤 완전히 녹아 밀짚색을 띄면 약불로 줄이고 가끔 휘저어 주다가 2~5분 뒤 호박색으로 변하면 불에서 내린 뒤 생크림(240ml), 바닐라 약간, 소금 한 자밤을 더하고 곧바로 매끈하게 섞일 때까지 휘젓는다. 완전히 식힌 뒤 병에 담는다. 입맛대로 끼얹어 주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산 평범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레스토랑 디저트처럼 업그레이드시켜 준다. 냉장고에서 2주간 두고 먹을 수 있고, 굳었을 경우 전자레인지에서 돌려 녹인 뒤 잘 휘저어 준다.

설탕을 피하고 싶다면 팬케이크에 끼얹어 먹을 수 있는 메이플 시럽 등을 추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설탕을 피하고 싶다면 팬케이크에 끼얹어 먹을 수 있는 메이플 시럽 등을 추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대체 당류의 세계 

그래도 백설탕을 피하고 싶다면 다음의 사항을 고려해보자. 일단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비정제 설탕이나 흑설탕 등은 딱히 더 건강한 식재료가 아니다. 영향을 미친다는 광물 등이 미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설탕을 쓴다면 효능보다는 입자나 맛, 수분 등의 차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접근하는 게 좋다. 물엿을 비롯한 액체 감미료는 단맛보다 음식의 촉촉함 유지에서 자기 몫을 더 잘 한다. 단맛을 너무 강하게 내지 않으면서 음식이 수분을 잃지 않거나, 멸치 볶음처럼 재료를 한데 아우르는데 쓰기 좋다. 양식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캐러멜 등을 만들 때 설탕이 쉽게 결정화 되어 굳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물엿 등을 첨가한다. 대체 감미료로 적당히 인기를 누리는 아가베 시럽은 특유의 신맛이 음식을 망칠 수 있으니 권하지 않으며, 메이플 시럽을 한 병쯤 갖춰 두면 팬케이크 등에 끼얹어 먹는 데는 물론, 겨울철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향과 단맛을 더하는데 요긴하다. 

음식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