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 “당사자 참관” 조건 달고 발부
법원이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법관 이메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이메일 송ㆍ수신자들의 참관을 보장하라는 조건을 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형사소송법 원칙에 따라 사생활 등 기본권 보호를 위한 취지라는 게 법원 입장이지만, 검찰은 기존의 영장 발부 관행과 다른 이례적인 조건 부여라며 수사 기밀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7일 한국일보 취재결과 서울중앙지법은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국을 대상으로 수차례 진행된 법관 이메일 압수수색과 관련해 “이메일을 주고받은 당사자 본인이 원할 때는 참관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건을 넣어 영장을 발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수사 실무를 고려하지 않은 영장 발부 조건이라는 게 검찰 입장이다. 이메일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달리 당사자가 계정이나 내용을 삭제할 경우 서버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복구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피의자 압수수색 사전 통지 예외규정에 속하는 ‘급속을 요하는 때’로 분류해 수사를 진행해 왔다. 압수수색 대상자(피압수자)인 포털업체 등에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해시값(디지털 지문 역할을 하는 자료의 원본 고유 코드)을 포함한 증거물을 전달받은 뒤 이를 사후에 피의자에게 통보하는 방식이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법원 논리대로라면 범죄자들이 모두 포털 회사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며 압수수색을 참관해야 한다”며 “법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적용돼야 하는데도 법원이 이번 사건에만 특별한 조건을 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 입장은 다르다. 모든 압수수색은 피의자 참여가 원칙이고, 디지털 증거의 경우 보다 엄격하게 절차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메일 작성 관련 당사자의 참여권은 영장판사 지침서인 ‘압수수색 영장 실무’에도 적힌 기본적 내용이라는 것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메일의 본질은 개인 간의 서신”이라며 “보관 장소인 포털업체 등을 피압수자로 해석하는 것은 검찰의 잘못된 인식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엄격해진 영장발부에는 고위 법관들을 중심으로 검찰의 ‘인권 수사’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인권 수사에 대한 지적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법관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 제기되는 게 마뜩잖은 분위기다. ‘자기 식구 챙기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사법농단을 계기로 형사소송법이 진보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수사 편의와 사건 관련자의 사생활보호를 조화시킬 수 있는 형사소송법 법리가 정립이 돼야 한다”면서도 “미국은 강간 사건에서 ‘미란다 원칙’을 세웠지만, 우리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사건에는 외면하다가 법관을 수사하니 인권 논의가 무성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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