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무용담처럼 군 생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의 군 생활이 무용담이 되는 것은 그만큼 고생을 많이 했다는 반증이다. 그 고생 중 훈련 할 때의 고생이 백미다. 훈련 때의 고생들은 사실 후진적인 개인장구 때문에 안 해야 할 고생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찌는 더위에 겨울에 입는 전투복과 똑같은 옷을 입고는 덥다고 팔소매는 걷는다. 총은 아프리카의 알카에다 말단 조직원이 쓰는 것과 똑같은 수준의 소총이다. 무거운 철모는 뛸 때마다 앞뒤로 덜렁거린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는데 전혀 땀을 배출하지 못하고 젖으니 마르지도 않는다. 비가 한 방울이라도 즉시 흡수하여 전투복이 내 몸에 착 달라붙어 버린다.
소매를 걷고 맨손으로 총을 잡고 뛰다가 갑자기 몸을 날려 엎드려쏴를 해야 한다. 진짜로 몸을 날리다가는 팔꿈치와 손바닥, 무릎이 다 까질 것 같아 살짝 엎드려 손바닥으로 자갈을 제거하고 살포시 엎드린다. 표적을 겨냥하기 위해 가늠쇠와 가늠자를 정렬시킨다. 숨을 멈춰야 하는데 계속 헐떡여 잘 안 된다. 야간사격을 할 때는 아예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표적을 맞추나. 현실이라면 자동으로 놓고 대충 갈길 수밖에 없어 보이니 탄약을 최대한 많이 소지해야 한다. 행군을 조금만 해도 전투화 때문에 발에 물집이 생겨 바늘로 물집을 터트리고, 결국 고질병인 무좀이 생겨 버린다. 방탄조끼는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사실 방탄조끼 줄까봐 겁난다. 방어력도 약한데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지. 그나마 이런 악조건을 군 생활 오래하며 요령으로 버텼는데, 이제 군 복무기간도 18개월로 줄어드니 나라를 어떻게 지킬지 걱정이 앞선다.
위의 에피소드는 필자 세대가 군 생활 할 때인 30년 전 상황이며 지금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똑같다. 그러나 이제부터 달라진다. 바로 육군이 2023년을 1차 목표로 ‘워리어플랫폼’이라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그것이 완성되면 영화에서 보던 현재 미군 수준의 장비로 전투를 하게 된다. 계절별로 재질과 형태가 다른 전투복과 전투장갑을 지급하고, 팔꿈치와 무릎보호대는 따로 하지 않아도 아예 전투복에 패드를 손쉽게 넣도록 설계하여 얼마든지 몸을 날릴 수 있다. 땀은 배출하고 신속하게 건조되며, 점퍼는 빗방울을 튕겨 낸다. 신발은 최고급 등산화 수준으로 부드럽고 편하다. 헬멧은 더 이상 덜렁거리지 않으며 데시벨 조정을 통해 총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대화 소리는 또렷하게 들리는 헤드셋과 무전기 등 첨단장비가 가득 장착된다. 방탄조끼는 부담 없을 정도로 가볍고 입기도 편하다. 소총에는 3배율 조준경, 레이저 표적지시기, 손잡이, 받침대 등이 장착되어 누구든 정확하고 빠른 사격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야간에도 적외선 화상으로 대낮처럼 환하게 볼 수 있는 장비를 착용하여 더 이상 자동사격 하지 않아도 된다. 낭비되는 총알이 거의 없으니 탄창의 다량휴대로 인한 무게도 줄일 수 있다.
필자는 실제 이 워리어플랫폼 장착 소총의 체험사격을 해 봤다. 기존 소총으로는 영점이 안 맞아서인지 검은 원에 단 한 발도 못 맞췄는데, 워리어플랫폼을 장착한 소총으로 사격 속도는 두세 배 이상 빨라졌음에도 10발 중 8발을 정중앙에 맞췄다. 빛이 한 점도 없는 깜깜한 상태에서의 사격에서도 8발을 의미 있는 곳에, 그중 4발은 중앙에 명중시켰다. 워리어플랫폼은 전투원의 능력을 급상승시켜 주는 묘약이다. 특히 군 복무기간 단축으로 숙련도가 저하될 우려가 큰 우리 군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전원 보급되어야 할 장비들이다. 문제는 1인당 약 600만원 정도의 예산이다. 그것이 비싸다고 생각하면 우리 젊은이들을 아프리카 테러범 수준의 장비로 복무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줄어드는 병력과 복무기간으로 인한 전력 약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신인균 경기대 한반도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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