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독 지역 남성들이 독일 정치 지각 변동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독일 극우 정당 급성장의 배경에는 이들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옛 동독 지역 남성들은 극우 바람의 원동력이다. 지난해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2.6%를 득표, 사상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지역 남성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AfD에 대한 이 지역의 평균 지지율은 옛 서독 지역보다 2배 이상 높았는데, 특히 동독 지역 남성의 AfD 지지율은 28%나 됐다.
동독 남성들이 극우 세력의 선봉장이 된 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이들이 느낀 깊은 좌절감, 상실감에 연유한다. 독일 통일과 함께 이들은 직업, 사회적 지위 심지어 아내까지 잃게 됐기 때문. NYT는 “‘사회주의 노동자 계급의 영웅’에서 ‘자본주의 실패자’로 몰락한 데 따른 분노를 극우적 목소리로 표출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극우 정당 지지자인 작센주 남성 프랭크 데흐벨(57)은 이 매체에 “서독인, 난민 그 다음이 우리”라며 “3등 시민이 되려고 이렇게 살아온 게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의 우경화는 경제ㆍ사회적 몰락과 관련이 깊다. 실제로 옛 동독 지역은 통독 이후 3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또 동독 지역 여성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거 서독으로 향했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통일 이후 동독 지역 인구는 10%가 줄었는데, 이 지역을 떠난 인구의 3분의 2는 여성이었다.
통독 이후의 극심한 남초(男超) 현상이 옛 동독 지역 남성들에게 더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끔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에베르바흐의 시장을 지낸 버나드 노악은 “젊은 동독 남성의 26%가 결혼할 상대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은 클럽에서 여성을 놓고 싸움을 벌이거나, 다른 유럽에서 파견 온 남성들의 숙소를 클럽과 멀리 떨어진 곳에 마련하도록 압박했다”면서 “이는 외국인 남성을 향한 동독 남성의 적개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페트라 쾨핑 작센주 통합부 장관은 “동쪽 지역에서의 남성성의 위기가 극우 세력을 키우고 있다”며 “아내를 얻게 해주면 시위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극우 성향의 동독 남성들은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배신자’로 부르며 유독 싫어하는데, 이 또한 자신들의 컴플렉스와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동독 출신의 신학자 프랭크 리처는 “동독 남성들의 분노는 동독 여성들의 성공과도 관련이 있다”며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의 성공이 자신들의 실패를 계속해서 상기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메르켈 총리는 극우 돌풍에 자신이 이끄는 대연정 소속 정당들이 최악의 성적표를 거두자, 지난달 말 18년간 맡아 온 기독민주당 대표직을 12월에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또 2005년부터 14년째 수행 중인 총리직도 이번 임기가 끝나는 2021년 9월까지만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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