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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빛은 영화인들에 든든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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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빛은 영화인들에 든든한 힘이었다”

입력
2018.11.06 16:28
수정
2018.11.06 18:26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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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故 신성일 영결식

유족ㆍ친지ㆍ시민 등 200여명 참석

엄앵란 “울며 보내고 싶지 않다”

화장 후 경북 영천서 영면

4일 별세한 배우 신성일씨의 영결식과 발인식이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영화인장으로 거행됐다. 연합뉴스
4일 별세한 배우 신성일씨의 영결식과 발인식이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영화인장으로 거행됐다. 연합뉴스

‘한국영화사에 가장 빛나는 별’ 배우 신성일씨가 화려했던 81년 삶을 마치고 6일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평생의 동반자이자 영화 동지인 배우 엄앵란(82)씨가 마지막까지 고인의 곁을 지켰다.

영결식은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엄씨를 비롯해 아들 강석현씨, 딸 경아ㆍ수화씨 등 유족과 친지, 장례위원회, 시민 등 추모객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배웅했다. 생전 고인과 각별한 인연을 나눴던 이장호ㆍ이두용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배우 신영균ㆍ안성기ㆍ이덕화ㆍ독고영재ㆍ김형일씨 등 동료 영화인들도 고인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유족을 위로했다.

엄씨는 분향과 헌화를 마친 뒤 유족을 대표해 영결식을 찾은 추모객에게 인사했다. 엄씨는 “가만히 앉아서 (영정)사진을 바라보니 ‘당신도 늙었고 나도 늙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운을 뗐다. 엄씨는 “나는 (남편을)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는 ‘왜 안 우냐’고 한다. 그런데 내가 울면 망자가 마음이 아파서 걸음을 떼지 못한다고 한다. 억지로 안 울고 있다. 집에 돌아가서 밤에 이부자리에서 실컷 울겠다”며 눈물을 삼켰다.

고인과 엄씨는 영화 ‘배신’(1964)을 함께 찍으며 사랑에 빠져 1964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고인의 잇따른 사업실패와 외도 등으로 54년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우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동지”라고 늘 말해 왔던 엄씨는 남편으로서 고인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었다. 그는 “그동안 희로애락도 많았고 엉망진창으로 살았다. 신성일씨가 다시 태어난다면 선녀같이 공경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며 애정과 원망이 뒤섞인 소회를 내비쳤다. “댁에 계신 부인들께 잘하셔라. 그러면 복이 온다”는 엄씨의 마지막 당부에 영결식장에 옅은 웃음이 번지기도 했다.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배우 신성일씨의 발인식에서 아내 엄앵란씨가 운구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배우 신성일씨의 발인식에서 아내 엄앵란씨가 운구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은 조사에서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고인의 이름을 모르는 국민은 없었다. 지난 시절 당신이 있어 행복했고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행운이었다”며 “이제 하늘의 별이 됐으니 유족과 영화계를 잘 보살펴 달라”고 애도했다.

영화계를 대표해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추도사를 했다. 오 위원장은 “불과 한 달 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당당하게 걸었던 고인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내가 여기 왔으니 걱정 말라는 듯 모두를 바라보던 눈빛은 영화인들에게는 든든함이었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내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상징적 존재인 고인을 재조명하고 또 다른 100년을 시작하고자 한다”며 “오직 영화를 위해서 살아간 진정과 열정을 잊지 않고 고인이 사랑한 영화를 치열하게 기억하겠다. 한국영화가 세계영화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차분한 분위기 속에 발인이 거행됐다. 고인의 손자가 위패와 영정을 들었고, 공동 장례위원장인 배우 안성기씨를 비롯해 이덕화씨, 김형일씨 등이 고인을 운구했다. 고인이 운구차에 실리자 엄씨는 고개를 숙여 작별 인사를 했다. 이후 고인은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안성기씨와 독고영재씨 등 후배 영화인들도 동행했다.

지난해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고인은 최근 병세가 악화돼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투병 중에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관객을 만났고, 별세 직전까지도 내년 봄 촬영을 목표로 이장호 감독과 새 영화를 준비해 왔다. 고인은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이래 1960~197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를 이끈 최고의 스타였다. 출연작만 524편, 그중에 주연작이 507편에 이른다. ‘맨발의 청춘’(1964) ‘만추’(1966) ‘안개’(1967) ‘휴일’(1968) ‘내시’ ‘장군의 수염’(1968) ‘별들의 고향’(1974) ‘겨울 여자’(1977) ‘길소뜸’(1986)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고인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생전 손수 지어 거주하던 경북 영천 자택 인근에서 영면에 들었다. 7일엔 이곳에서 고인이 명예조직위원장직을 맡았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마련한 추도식이 열린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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