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 있던 저를 일깨워 준 작품이었죠.(웃음)”
연극으로는 데뷔 12년차이지만, 매체 연기로는 2년차 새싹인 김선호에게 tvN ‘백일의 낭군님’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많이 채찍질 해왔던 편이었던 것 같아요. 결과를 지레짐작하고, 갇혀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번 작품을 통해 저를 가두고 있던 벽을 허물 수 있었어요.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됐고. 그 동안 스스로를 볼 때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과거 자신을 엄격한 기준에 맞춰 가둬왔었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꺼낸 김선호. 그의 마음가짐을 바꾸게 만든 것은 ‘백일의 낭군님’을 향한 시청자들의 호평이었다.
“사실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힘들었던 건 제가 율과 홍심이의 사랑이 빛나고 사건들이 진행되는 데 있어 원활함을 제공해야 하는 인물이었는데 과연 제 위치를 잘 소화했나 하는 고민 때문이었어요. 당시에는 제 연기에 대해 조금 부정적으로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예상 밖으로 작품의 결과가 너무 좋다 보니 ‘내 스스로 너무 갇혀 있었구나.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청자분들이 저의 이런 면들을 좋아해주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그 동안 너무 스스로에게 부정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동안 너무 밝은 캐릭터들을 연달아 해서 어둡고 악한 캐릭터는 못하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그런 역할들도 이제는 재미있게 즐기면서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뿌듯했죠.”
실제로 ‘백일의 낭군님’은 시청자들의 사랑 속 최종회 시청률 14.4%를 기록, tvN 월화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함은 물론 역대 tvN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톱4’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시청률이 잘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감독님조차도 예상을 못하셨기 때문에.(웃음) 그 동안의 평균치가 있으니까 너무 기대하는 것도 무서웠는데,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와서 저희끼리 하루하루 놀랐었죠. 잘 나오면 7~8%, 그 정도 나오면 진짜 행복하겠다 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정말 좋더라고요.”
김선호가 꼽은 ‘백일의 낭군님’의 흥행 비결은 배우들의 호연이었다.
“역시 엑소의 힘이 아닐까요.(웃음) 물론 (도)경수와 (남)지현이가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을 이끌어줬지만, 사실 모든 배우 분들이 제 자리를 정확하게 고민하고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스태프 분들도 정말 열심히 해주셨고요. 감사하죠.”
이번 작품으로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는 평가를 받은 김선호는 이 같은 이야기에 “그렇게 봐 주시면 너무 감사하다”며 얼굴을 붉혔다. 결과적으로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사실 김선호가 ‘백일의 낭군님’의 출연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 사극 도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작품을 선택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거의 대본 리딩 전날에야 출연을 확정지었을 정도니까요. 가장 무서웠던 이유는 제가 사극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제대로 작품을 준비하기에 시간이 없다고 느껴졌었거든요. 그렇지만 풋풋한 경수와 지현이가 출연한다는 이야기에 ‘나도 그 풋풋함에 물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정했었죠.(웃음) 작품을 고를 때 늘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결국은 사람’이라는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주변 분들이 모두 입을 모아 칭찬했던 경수와 지현이, 이미 친분이 있었던 기두 형 등 좋은 분들이 함께 하는 작품이라면 지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어요.”
김선호의 예상대로 첫 사극이었던 ‘백일의 낭군님’은 녹록치 않았다. 촬영 당시 무더웠던 날씨는 물론, 처음으로 접해보는 사극 말투, 의상 등 모든 것이 어렵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려웠죠. 말투도 평소 제 말투가 아니고.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어요. 역할을 만나가는 과정이 더뎠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선배님들께서 ‘사극이 끝나면 한 단계 스펙트럼도 넓어질 것’이라고 조언해주셨거든요. 아무래도 말에 대한 고민도 하고, 거기에 제 감정을 싣는 고민도 하다 보니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렵지만 좋은 경험이었어요. 사극에 대한 두려움을 깼냐고요? 사실 아직 복장도 무섭고, 더위도 무섭고. 여전히 무서워요.(웃음) 그렇지만 다음에 하면 조금 더 제 연기가 그 인물을 만나는데 가까워질 거라는 확신은 생겼어요.”
매체 연기에 도전한지 2년, 또 한 번 성장에 성공한 김선호는 아직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다. 특히 그간 능글맞고 선한 캐릭터를 주로 도맡아 왔던 만큼, 악역에 대한 갈증은 더욱 크다.
“사실 악역을 너무 해보고 싶어요. 사실 나쁜 사람들이 얼굴에 ‘나 나쁜 사람’하고 써져 있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보여줄 수 있는 악인을 연기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저에게서 발현되는 악역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함, 설렘이 있어요. 굳이 ‘어떤 악역’이라고 정의 내리기 보다는 제가 만드는 악역이면 뭐든 좋을 것 같아요. 차기작은 아직 결정된 바 없지만, 감정의 폭이 큰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캐릭터도 좋고요.”
앞으로 시청자들에게는 ‘다음이 궁금한 배우’, 동료들에게는 ‘다음에도 같이 작품을 하고 싶은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전한 김선호는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며 남은 올 한 해를 마무리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바쁘게 다섯 작품에 연달아 출연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너무 기계적으로 촬영장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너무 타성에 젖어서 연기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모든 걸 털고 즐기면서 다시 스텝을 밟아 나갈 생각이에요. 기초부터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걸 다 털고 초심으로요. 겸손하자는 의미도 아니고, 연기를 즐기면서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일이 아니라 즐거운 촬영을 했다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요.”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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