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매체 보도… “화학자ㆍ독성학자 등 11명 파견”
사우디 국왕, 검찰에 “살해범 법정에 세우라” 지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자국 출신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의 피살 사실을 덮기 위해 ‘사건 은폐조’를 투입했다는 터키 매체의 보도가 나왔다. 카슈끄지 시신의 행방이 여전히 묘연한 가운데, 만약 해당 보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우디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5일(현지시간) 터키 친정부 성향 일간지 ‘사바흐’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가 살해된 지 9일 후인 지난달 10월 11일 독성학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은폐팀’을 터키 이스탄불로 파견했다. 해당 시점은 카슈끄지의 실종 이후, 그가 사우디 정부 요원들에 의해 살해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한층 확산되고 있음에도 사우디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던 때였다.
앞서 카슈끄지는 지난달 2일 터키 국적 여성과의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받기 위해 이스탄불 내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종적을 감췄는데, 한동안 사우디 당국은 별다른 근거 없이 그가 멀쩡히 나갔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해명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거센 압박에 사우디는 실종 18일 만인 지난달 20일에야 카슈끄지의 사망을 마지못해 인정했고, 사우디 정부 측의 연루 정황을 폭로한 보도가 계속 쏟아지자 다시 닷새 후 자국 정부 요원들의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터키 매체의 이번 보도가 주목되는 이유는 이른바 ‘사건 은폐조’의 투입 시점이 사건 현장인 사우디 총영사관에 대한 터키 경찰의 수색이 이뤄지기 한참 전이기 때문이다. 터키 경찰이 사우디 정부 승인을 받아 사우디 총영사관 수색에 나선 건 10월 17일이었다. 반면, 사바흐가 공개한 은폐조 일행 11명은 10월 11일부터 이스탄불에 7일간 머무르면서 매일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고 같은 달 20일에야 터키를 출국했다.
사바흐는 이를 두고 “터키 경찰의 수색 전에 증거 인멸 등 사건 은폐 임무가 수행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또 익명의 터키 치안 당국자를 인용해 사우디가 ‘수사팀’이라며 터키에 보낸 대표단에 화학자 아흐마드 압둘아지즈 알자노비, 독성학자 칼레드 야흐야 알자라니 등의 전문가가 포함됐다고 전하면서 이들의 사진도 공개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고문 야신 악타이는 지난 2일 언론 기고문에서 사우디 암살팀이 카슈끄지 시신을 토막 낸 다음, 산(酸) 용액에 녹여 처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자국 검찰에 이 사건의 범인들을 법정에 세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다르 알 아이반 사우디 인권위원장은 이날 유엔의 국가별 정례인권 검토(UPR) 모두 발언에서 이같이 밝혔다. UPR은 4년 6개월마다 유엔 회원국의 전반적 인권 상황을 검토하고 개선사항을 권고하는 회의로, 193개 유엔 회원국은 인권이사회(UNHRC)의 UPR을 받아야 한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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