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달리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손해배상 소송은 일본 측의 재판 거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소송과 달리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다 보니 ‘송달’과 국제법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내 법원에서 진행 중인 위안부 관련 소송은 총 6건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건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 중 한 건은 일본 외무성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에 따라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소장을 법무성에 전달하지 않고 반송해 재판 기일이 연기되고 있고, 나머지 한 건도 소송절차를 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민사소송법상 피고에게 소송 사실을 알리는 소장이 전해져야만, 즉 송달이 돼야만 재판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측이 송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재판을 시작하기는 어렵다”며 “외교라인을 통한 해법 모색밖에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헤이그송달협약 14조는 “송달할 재판상 문서의 전달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애로사항은 외교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7월30일 외교부에 외교 경로를 통한 송달을 요청한 상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대리하고 있는 김세은 변호사는 “우편 송달 방식도 있지만 국내 법규정이 없어 우리 법원이 받아들일지 미지수”라면서 “결국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고 밝혔다.
송달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우리 법원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맡을 수 있는지, 즉 재판권이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주권국가 행위에 대해서는 외국 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는 국가 책임 면제 이론이 국제소송에서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고 판단되면 소송은 각하된다.
수도권 소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대법원은 외국의 주권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경우 재판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탈리아 법원은 국민인 루이키 페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강제노동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렸고, 이탈리아 헌법재판소 또한 독일 정부 손을 들어 준 국제사법재판소(ICJ) 결정과 달리 위헌판결을 내렸다”면서 “뛰어넘지 못할 장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지역 법원 한 부장판사도 “관습법에 대한 해석 문제라 외국 정부에게 불법행위 책임이 있다고 판결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2013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위안부 소송을 맡았던 이영진 헌법재판관은 관련 논문에서 "중대한 인권 위반행위 등에 대해서는 국가 책임 면제 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면서 "관련 협약 가입, 입법, 국제적 공조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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