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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극물 오랜 시간 지나도 흔적 남겨... 0.000000001g의 농약 검출로 사건 해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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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극물 오랜 시간 지나도 흔적 남겨... 0.000000001g의 농약 검출로 사건 해결도

입력
2018.11.06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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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포천 고무통 살인’ 사건의 범인 이모씨가 남편과 내연남 둘을 모두 살해했다고 확신했던 이유는 두 시신에서 동일하게 발견된 독극물 ‘독시라민’ 때문이다. 발견 당시 심하게 부패했던 남편 시신은 피부와 연부조직, 내부장기 등 신체 상당부분이 소실돼 있었다. 살인된 것인지, 그렇다면 누가 범인인지 등을 알려줄 증거를 시신에서는 찾기 어려운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으로 추정되는 조직에는 여전히 독시라민 성분이 남아있었다. 검출량은 치사 농도 14~300㎎/㎏의 범위에 드는 52.97㎎/㎏. 더군다나 고혈압 치료제에 이용되는 아테놀롤 62.70㎎/㎏도 함께 검출됐다. 약과 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했다.

독극물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흔적을 남긴다. 2015년 포천에서는 40대 여성이 2011년부터 제초제를 탄 음료와 음식을 조금씩 먹게 하는 수법으로 전 남편과 현 남편, 시어머니 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역시 매장한 시신을 다시 부검해 농약 성분인 ‘파라콰트’를 검출해내면서 사건의 전말을 밝혀낼 수 있었다. 피해자가 사망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고 제초제를 조금씩 섞어 먹였기 때문에 성분 검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매장된 지 2년 된 시어머니 유해에서 발견된 나노그램(1ng=0.000000001g) 단위의 농약 성분이 사건 해결의 물꼬를 텄다.

독극물을 이용한 범죄 수법은 경제ㆍ사회ㆍ문화적 배경에 따라 차이가 난다. 마약 거래가 활발한 미국에서는 마약류를 이용한 독극물 범죄, 농업이 발달한 동남아 국가에서는 농약류를 사용한 범죄, 산업이 한창 발전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는 화학물질을 통한 독극물 범죄가 주로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빠른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독극물 범주가 다양해졌고, 인터넷이나 택배가 발달하면서 일반인이 쉽게 독극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사용하는 게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제초제에 이용되는 ‘그라목손(파라콰트)’ ‘청산가리’, 혹은 복어독으로 상징되는 ‘테트로도톡신’ 등이 대표적인 독극물로 인식돼 왔으나 진정ㆍ진통ㆍ수면제의 성분으로 사용되는 ‘브롬제’, 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인슐린과 모르핀,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 등이 독극물로 악용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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