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수 말로는 2012년 ‘Malo Sings Baeho’란 음반을 냈다. 그는 트로트 가수 배호의 대표곡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등을 블루스와 보사노바, 스윙 리듬과 재즈 편성 반주로 재현했다. 한 인터뷰에서 말로는 ”배호의 음악은 빈자리가 보여 달려들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며 “마치 논문을 쓰는 심정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앞서 2000년에는 배호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음악극 ‘천변캬바레’가 공연됐다. 말로는 그 극의 음악감독 겸 극 중 배호를 짝사랑하는 밴드마스터 역을 맡아 출연하기도 했다.
배호가 가수로서 대중적 인기를 누린 기간은 67~71년의 불과 5년이었다. 1942년 4월 중국 산둥성 지난에서 광복군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나 해방 후 귀국한 그는 55년 아버지가 간경화로 숨지고 이듬해 중학교를 중퇴, 외숙부인 김광수(전 동양방송 악단장)와 김광빈(MBC 초대악단장) 등의 주선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곧잘 했다는 그는 드럼을 익혀 김광빈 악단과 김인배 악단의 드러머로, 가수로 활동했다. 63년 데뷔했으나 줄곧 무명이다가 67년 서라벌예대 출신 작곡가 배상태의 곡 ‘돌아가는 삼각지’로 일약 스타가 됐다. 그해 삼각지 로터리가 철거되고 입체교차로가 섰지만, “삼각지 로타리에~”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는, 사라진 로터리의 추억처럼, 도시의 우수와 어둠, 아릿한 상실을 전하곤 했다. ‘누가 울어’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등이 잇달아 히트했지만, 그 무렵 그는 고질이던 신장염이 악화해 무대에 서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그가 71년 11월 9일 만 29세로 별세하자, 장례식이 열린 동숭동 옛 예총회관 앞은 상복을 차려입은 여성 팬들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10년 뒤인 81년 MBC 창사 20주년 기념 설문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가 그였고, 다시 10년 뒤 90년 MBC 설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 1위’가 그였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배호를 “한국 가요사에서 가장 완벽한 음을 구사한 천재 가수”라 평하기도 했다.
가수 말로는 당시의 트로트 창법과 달리 상대적으로 꺾임 없이 담백한 그의 창법에서 샹송과 스윙의 흔적을 보았다고 했지만, 어떤 이들은 프랭크 시내트라의 ‘신사’ 같은 이미지와 크루닝(crooning) 창법의 스탠더드 팝의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유재하(1962~1987) 이전에, 김현식(1958~1990)과 김광석(1964~1996)이전에, 그가 있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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