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였고, 감독에게는 최고의 배우였다. 그가 1960년대 한국영화계를 10년간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진우 감독은 배우 신성일씨를 “명배우”라는 한 단어로 정의했다. 정 감독의 연출작 53편 중 ‘밀회’(1965) ‘초연’ ‘하숙생’(1966) ‘밀월’ ‘하얀 까마귀’(1967) 등 무려 22편에 신씨가 주연으로 출연했다.
신씨는 불의도 참지 않았다고 한다. 정 감독은 “신씨는 성격이 아주 불 같았다.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할 말은 꼭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제작부 스태프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신씨는 폐암 투병 중에도 신작 영화를 기획하며 동료 영화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맨발의 청춘’ 이후 오랜 교분을 쌓아 온 이장호 감독은 신씨가 기획한 새 영화의 연출을 맡을 예정이었다. 이 감독은 “내년 봄 영화를 촬영하기로 약속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황망하다”며 “미완성 유작을 어떻게든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던 배우 안성기씨는 “1960년대에 아역배우로 활동하면서 여러 작품에서 선배님과 함께했다”며 “오랜만에 작품을 같이하게 돼 너무나 기뻤는데 이렇게 떠나실 줄 몰랐다”고 비통해 했다. 안씨는 “큰 별이 졌지만 그 빛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며 “그 연세까지 현장에 계신 모습이 후배들에게는 좋은 본보기이자 버팀목이었다”고 되새겼다.
신씨와 동시대에 활동했고 한국영화배우협회도 함께 이끈 배우 신영균씨는 “신씨는 매우 의욕적인 사람이라 배우뿐 아니라 영화계를 위해 정치도 하고 후진 양성을 위해 감독도 했다”며 “짧은 인생이지만 영화 안에서 다양한 삶을 살았으니 행복했을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올해의 아름다운예술인상 수상자로 선정돼 9일 시상식을 앞두고 있었다.
4일 고인의 빈소에는 하루 종일 영화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창동ㆍ정지영 감독, 배우 이순재, 문성근, 선우용여, 이동준, 박정수, 박상원, 임하룡, 방송인 임백천, 개그맨 주병진 등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배우 윤일봉씨는 “열흘 전에도 새 영화 캐스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렇게 떠나다니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며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 한 촬영장에서 시나리오에 없던 노출 장면을 강요당했을 때 신씨가 도움을 준 일화를 방송에서 공개했던 김수미씨는 “하늘에서 배우 하라고 그렇게 일찍 데려갔나 보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빈소는 오랜만에 만난 영화인들이 회포를 푸는 자리이기도 했다. 조문객들은 오래오래 빈소를 지키며 신씨와 함께한 추억을 나눴다. 마지막까지 영화인의 화합을 이끌며 그는 그렇게 떠났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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