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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맨발의 청춘' 천상 스크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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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맨발의 청춘' 천상 스크린으로

입력
2018.11.04 15:47
수정
2018.11.0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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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별세한 배우 신성일. 한국일보 자료사진
4일 별세한 배우 신성일. 한국일보 자료사진

충무로의 가장 큰 별이 떨어졌다. 20세기 후반 한국영화의 대명사였던 영화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성일)씨가 4일 오전 2시 25분 전남대병원에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고인은 한국영화 99년 역사에서 첫손에 꼽힐 스타다. 출연작은 600여 편에 이른다. 507편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6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한복판에 있었고, 1970~1980년대 한국영화의 쇠퇴를 지켜봤다. 충무로가 부침을 겪어도 그는 언제나 일급 스타였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 신필름 신인 배우 오디션을 통해 충무로에 발을 디뎠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로 은막에 데뷔했다. 대가족 속의 고등학생 막내아들 역할이었다. 고인은 62년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로 스타덤에 올랐다. 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에서 밀수 일을 하는 폭력배 서두수를 연기하며 당대 청춘의 상징이 됐다. 고인은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 엄앵란씨와 1964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며 장안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날개’ ‘만추’ ‘안개’ ‘군번 없는 용사’ ‘겨울여자’ ‘내시’ ‘길소뜸’이 고인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연기 외 활동도 활발했다. 한국배우협회 회장,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89년 성일씨네마트를 설립하고 ‘코리안 커넥션’ 등을 제작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의정 활동을 했다.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치료에 전념해왔다.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1968, 1990), 아시아영화제 남우조연상(1980)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엄씨와 아들 석현, 딸 경아ㆍ수화씨가 있다. 장례식은 영화인장으로 엄수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 6일 장지 경북 영천.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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