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용차량 관리규정’을 보면, 장ㆍ차관급 공무원에게 관용차를 배정한다. 차량 등급이나 배기량 기준은 없다. 그럼에도 장관급은 3,800㏄ 제네시스 EQ900을, 차관급은 3,300㏄ 제네시스나 체어맨을 많이 탄다. 시ㆍ도 단체장과 공공기관장도 최소 3,300㏄ 이상 대형 세단을 선호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행정안전부 가이드라인을 참조해 공용차량의 대형화를 자율적으로 억제하라”고 권고했다. 행안부 가이드라인은 장관급 3,300㏄, 차관급 2,800㏄.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장ㆍ차관은 거의 없는 셈이다.
□ 환경운동연합이 최근 47개 중앙행정기관 장ㆍ차관급 기관장이 타는 관용차를 조사했다. 환경부 기상청 등 4개 부처만 친환경차(하이브리드)였고, 43개는 대형 휘발유차였다. 정부가 미세먼지 절감을 위해 보급을 추진 중인 전기차나 수소차는 한 대도 없었다. 중앙행정기관 전체 관용차 8,267대 중 친환경차 비율은 겨우 3%(255대). 그나마 전기차는 21대, 수소차는 단 2대에 불과했다. ‘공공기관 에너지 합리화 추진 규정’은 중앙행정기관이 의무적으로 공용차량의 70% 이상을 친환경차로 구매 또는 임차하도록 규정했다.
□ 휘발유차 수명은 몇 년 안 남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는 2025년, 독일은 2030년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할 방침이다. 전기차와 수소차는 자동차산업의 차세대 성장동력이자 친환경 미래차다. 시장을 선점하려는 일본 독일 중국 등의 주도권 다툼도 치열하다. 지난달 유럽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바쁜 일정을 쪼개 ‘수소차 외교’에 나선 배경이다. 문 대통령은 현대자동차가 프랑스에 수출한 수소차 ‘넥쏘’를 시승했다. 현대차는 세계 최초로 수소차 양산에 성공했지만 충전소 부족과 각종 규제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 한국 자동차산업은 총체적 위기다. 현대차 생산량은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고 3분기영업이익은 작년에 비해 76%나 급감했다. 미래차 경쟁력도 암울하다. 관가의 검은색 대형차 행렬은 권위주의 시대 유물이다. 장관들이 대형 휘발유차를 고집하니 금융기관장, 기업 CEO들도 따라간다. 친환경차는 우리 자동차산업의 미래다. 정부는 2022년까지 친환경차 200만대(전기차 35만대 포함)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장ㆍ차관급을 비롯한 공공기관장 관용차부터 당장 친환경차로 바꾸자.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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