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서신협 최영훈 전무
“신나게 놀았더니 잘 놀았다고 모범상 받은 기분입니다!”
최영훈(58)씨는 원래 직함인 신용협동조합(대구 대서신협) 전무보다 노래강사로 더 유명하다. 2014년 봄에 문을 연 무료 노래교실이 워낙 성공한 까닭이다. 현재 회원이 300여명이 넘고, 1년에 한번 2월에 치르는 가수왕 선발대회에는 1,500명 남짓한 관객이 몰린다. 초대가수가 ‘안동역에서’를 부른 진성을 비롯해 전국노래자랑 급이어서 볼거리가 풍성하다.
노래교실 회원 중에 그가 신협 전무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다가 잘리는 거 아닌가?”하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기우다. 오히려 노래교실 덕에 신협 살림이 확 폈다.
“2014년에 노래교실을 열고 난 후로 본점과 3개 지점 합쳐서 자본금이 1,000억에서 3,700억으로 늘었어요. 북구 지점은 무료 커피숍으로 고객을 많이 유치했구요. 보통 신협에서 자본금 1,000억 늘리는데 20~30년 걸린다는데, 우리는 4년 만에 해냈습니다. 고객의 힘이죠.”
직원도 대폭 늘렸다. 2014년 봄 13명이던 직원이 현재는 30명이다. 지원 규모가 두 배 이상 신장된 셈이다.
성장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노래교실 시간을 더 늘리기로 했다. 현재 화요일 오후 2시와 금요일 저녁 7시, 두 타임을 열고 있지만 조만간 인근 창조경제혁신센터 내에 공간을 하나 더 얻어서 월요일 저녁과 금요일 오후에도 노래교실을 진행할 예정이다.
◇ 우산이 없어서 비닐포대 쓰고 마중 나오신 어머니
그는 노래교실의 인기 비결을 ‘공감’으로 꼽았다. 우선 어르신들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많다. 경북 구미 해평이 고향인 그는 매일 4.5km가 넘는 거리를 걷고 뛰어서 등교했다. 마을 앞 개울에 다리가 없어서 비가 오면 길이 막혔다. 그런 날은 마을 이장님이 새벽에 “학교에 가자 마라”고 방송을 했다.
집도 가난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가세가 더욱 기울었다. 형 둘과 누나 하나가 있었지만 작은형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곤궁한 시절이 길었던 까닭에 마이크만 잡으면 중장년 층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 줄줄 쏟아져 나온다.
“노래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냅니다. 그러면 노래가 마음에 착착 감기죠.”
‘홍시’나 ‘모정의 세월’을 부를 땐 어머니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이 없어서 비료 포대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가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워낙 가난한 시절이었다.
‘꽁당보리밥’, ‘검정고무신’도 공감을 끌어내기 좋은 곡이다. 어린 시절, 간식이라곤 삶은 보리에 간장 부어서 우걱우걱 씹어 먹던 게 다였다. 반찬이 없어서 띠풀의 어린 새순인 ‘삐비’(삘기)를 뽑아서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회원들이 ‘맞다, 맞다’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그의 말을 빌리면 “노래에 빠져들 준비가 된 신호”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옛날이야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참가한 체전이었다. 아침마다 4.5km를 뛰어다닌 덕에 학교 대표로 뽑혔고 군(선산군)에서도 1등을 했다. 의기양양하게 도(道) 대회에 나갔는데, 막상 경기장에 가서는 풀이 죽었다. 응원석에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워낙 가난한 시절이라 대구까지 나올 형편이 되는 사람이 없었던 거였다.
“뜀박질 하던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진성의 ‘태클을 걸지 마’를 부릅니다. 외로움을 떨치려 더 힘차게 뛰었던 그날을 떠올리면서요. 무수한 태클을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죠.”
◇ 회원들에게 ‘신기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
회원들에게 가끔 “신기(神氣)있다”는 말도 듣는다. 회원들의 마음을 귀신 같이 알아맞히는 까닭이다.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노래를 구슬프게 불러요. 평생 맞고 산 어머님들은 노래를 할 때 악을 쓰는 경향이 있구요. 노래하는 모습만 봐도 과거와 현재가 눈에 들어오죠. 그런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알았어요?’하고 눈이 동그래집니다.”
본인도 그런 경험이 있다. 너무 노래가 하고 싶어서 4년 동안 성악가에게 발성을 배운 뒤 2년 동안 지하연습실에서 혼자 연습을 했다. 노래만 하면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이 구슬이었으면 2년 동안 서른 말은 됐을 겁니다. 노래하면 잊고 있던 옛날 일이 생각나고, 반성이 되기도 하고, 치유도 되고, 삶을 다시 한번 살아낸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에 찌들어 있는 감정들이 훌훌 털려나가고 삐비처럼 새순이 돋는 느낌이었죠. 노래의 힘을 절실하게 느꼈고, 또 확신했습니다.”
노래의 맛이 곧 노래의 감동이 된다. 때로 가사를 바꿔가면서 맛과 감동을 버무려 회원들과 공유하다 보니 남다른 노래교실이 될 수밖에 없다.
◇ 대통령 표창보다 가요무대가 더 간절
경쟁을 즐기는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한 프로그램도 짰다. 매월 가수왕을 4명 뽑고, 6개월에 한번씩 24명의 가수왕 중에서 6명을 선별한다. 이 6명의 가수왕은 다시 2월에 열리는 최종 노래자랑에 진출한다. 상금도 만만찮다. 톱스타 가수들이 축하 무대를 꾸미고 상금도 쏠쏠하다. 1등이 200만, 2등이 150만, 3등은 100만이다. 1등에게는 가수증도 준다. 회원들이 노래 대결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년에는 음반도 낼 계획이다. ‘안동역에서’의 노랫말을 만든 김병걸과 ‘미운 사랑’을 작곡한 송광호가 의기투합했다. 노래교실 회원들의 자부심을 높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달에는 “우리 전무님 너무 신나게 놀다가 잘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노래교실 회원들의 기우를 싹 날려버릴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다. 10월 30일에 열린 ‘금융의 날’ 기념식에서 금융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대통령 표창하고 가요무대 출연을 맞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노래교실 선생님이 가요무대 나와서 멋지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자부심이 철철 넘칠 것 아닙니까. 첫째도 노래교실, 둘째도 노래교실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노래교실 회원들과 신나게, 흥 넘치게,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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