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모두 1,000만 관객 넘게 모은 ‘신과 함께’ 시리즈는 흥행 새 기록을 만들기까지 생각지도 못한 높다란 고개를 하나 넘어야 했다. 충무로 간판 감초배우로 1편 흥행에 힘을 보탰던 오달수에 대한 미투 폭로가 올해 초 나와서다. ‘신과 함께’ 2편 ‘인과 연’의 촬영은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제작사는 오달수 출연 장면을 모두 재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오달수를 대신할 만한 연기력과 더불어 촬영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순발력을 갖춘 배우가 필요했다. 낙점을 받은 배우는 조한철(45)이었다. 그는 오달수가 맡았던 ‘판관1’ 역할을 연기하며 1,220만 관객 동원에 이바지했다.
조한철은 이름보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배우였다. 20년 동안 ‘연기 우물’만 팠으니 낯익을 만했다. 최근엔 그의 이름이 대중의 머리 속에 새겨지고 있다. ‘신과 함께2’ 흥행을 만끽한지 한 계절 남짓 지났는데, 방송에서도 히트작이 나왔다. 예상 밖 10%대 시청률로 방송계를 놀라게 한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으로 그는 ‘신과 함께2’의 행운이 실력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줬다. 우직하게 한 길을 걸으며 이제 막 성공의 길목에 들어선 조한철을 최근 서울 효자동에서 만났다.
아찔한 도전이 아름다운 결실로
조한철에게 2018년은 격동의 시간이었다. 5년 동안 몸담았던 소속사를 나와 다른 곳으로 옮겼고, 갑작스레 ‘신과 함께2’에 출연했다. ‘백일의 낭군님’을 통해 처음으로 조선의 왕을 연기했다. 데뷔 20년 동안 맡은 배역 중 가장 직책이 높은 역할이었다. 형사(tvN ‘마더’)나 변호사(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사채업자(OCN ‘아름다운 나의 신부’)나 기업 총수의 충직한 비서(영화 ‘침묵’), 연예기획사 실장(KBS ‘프로듀사’) 등 다양한 변신을 시도한 뒤 얻은 역할이었다. 들뜬 듯한 그의 목소리는 코믹한 역할도, 비열하거나 집요한 인물에도 잘 어울린다.
‘백일의 낭군님’ 속 왕은 왕의 권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근엄하고 진중한, 전형적인 임금이 아니니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가 연기한 왕은 좌의정 김차언(조성하)의 반정 무리와 손잡고 왕으로 추앙된 불안정한 존재였다. 세자 이율(도경수)을 사위로 달라는 김차언의 강압도 모두 받아들이는 비겁한 왕이었다. 권위도 없고 위태로운 위치에 놓인 불안정한 심리를 눈빛과 목소리에 힘을 줘 표현했다.
“내면이 약한 사람들이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잖아요. 소리지르고 흥분을 못 참고요. 나약하고 유약한 왕의 모습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간만에 연극 무대처럼 (에너지를) 발산하는 연기를 한 것 같아 좋았어요.”
‘신과 함께’ 2편에서도 쉽지 않은 연기를 해야 했다. 컴퓨터그래픽(CG) 위주의 판타지 영화라 블루스크린 앞에서 혼자 연기하는 상황이 잦았다. “처음 하는 연기”였다. 영화 속에선 하정우와 이정재 등 주연배우들과 나란히 있지만, 조한철의 모습은 별도 촬영했다가 CG로 섞은 것이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김용화 감독의 조언에 더 용기를 냈다.
어려운 제작 환경, 좋은 사람들로 위로받아
조한철은 1998년 연극 ‘원룸’으로 데뷔했다. ‘올해가 데뷔 20주년’이라고 언급하자 그는 “전혀 몰랐다”며 웃었다. 그는 “그런 걸 인식하지 못했던 걸 보면 저한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며 “어제같이 하루가 더 시작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조한철은 “중3때 이미 내 인생을 결정했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중학생 때 성당에서 교리를 가르쳐주던 대학생 형들을 따라 대학로 연극을 보러 다녔다. 황지우 시인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원작 삼은 동명 연극을 보고 “배우가 돼야겠다”는 꿈을 키웠다. 당시 극단 연우무대 소속이던 강신일 문성근 등 배우들의 연기에 매료됐다. 이후 그는 돈을 모아 주말이면 대학로로 달려갔다. 98년 무대에 오르며 막연했던 꿈이 현실이 됐고 고생길이 시작됐다. 주로 연극과 뮤지컬 출연에 집중하다 방송과 영화에도 기웃거렸다. 2000년 영화 ‘박하사탕’에 단역으로 출연해 호된 신고식을 치렀고, SBS 드라마 ‘대풍수’에도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됐다.
특히 ‘대풍수’는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이란다. 자객 무영이라는 인물로 캐스팅됐지만 갑자기 제작과 편성이 취소되면서 “백수생활을 해야” 했다. 좌절감이 몰려왔던 시기였다. 다행히 방송사가 편성을 결정하면서 연출자였던 이용석 PD가 그를 불러들였다. 절망적이었던 상황이 한 순간 희망으로 바뀌었다.
아픈 기억 때문인지 ‘백일의 낭군님’은 더 특별하다. 100%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지면서 배우도 스태프도 만족감이 높았다. 미리 대본을 받아 보다 나은 연기를 할 수 있었고, 제작진은 완성도 높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사극으로 10대부터 중ㆍ장년층까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분명했다. “앞으로 사전제작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배우나 스태프도 밤샘 촬영 없이 고된 일정을 소화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사전제작은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조한철은 요즘 “좋은 사람만 보면 (일) 욕심이 생긴다”고 한다. ‘신과 함께2’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것도 김용화 감독을 보고 나서다. 대체배우로 투입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고,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러나 김 감독을 만나고 마음이 흔들렸다. 김 감독의 사무실을 찾은 조한철은 “옛날 표현에 ‘버선발로 나온다’는 말 그대로” 자신을 반겨주는 김 감독에 한 번 놀랐고, 그의 겸손한 태도에 또 한번 놀랐다. “충무로에서 성공한 감독님인데 권위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김 감독님과 2시간 동안 이야기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죠.” 결국 작품보다 사람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백일의 낭군님’에서 함께 출연한 조성하도 “마음 좋은 선배”다. “조 선배께서는 출연료 상당 부분을 우리 후배들 먹이는 데 쓰셨을 겁니다. 복날이면 삼계탕, 촬영 끝나면 고기나 회를 자주 사주시느라 고생하셨죠(웃음).”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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