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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양진호의 공범들

입력
2018.11.02 13:14
수정
2018.11.08 15: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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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하드 서버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갑질’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무차별적인 폭행과 상식 밖의 엽기 행각에 대한 제보와 증언이 줄을 이었고,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이의 비이성적이고 불법적인 행태에 분노했다. 그리고 양진호가 소유한 회사에 면접을 봤던 후기까지 올라와 화제가 됐다. 그 글에 몇 안 되는 회사의 장점은 이렇게 적혀 있다. “불법 리벤지 포르노, 일본 성인 영상 등을 위디스크에서 거의 무료로 받을 수 있음”

비분강개해 이 후기를 남겼을 대한민국 남성 청년을 생각하면 참담해진다. 여기서 불법 리벤지 포르노란 디지털 성폭력 촬영물을 의미한다. 그는 면접 내내 이어진 불합리함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고발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며,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저지르는 불법에 마땅히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무료로 제공되는 불법 촬영물에 대해서는 불법이라는 단어를 적어 놓고도 회사의 장점으로 꼽으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을 “미래를 봐야 하는 청년”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는다.

나는 그가 이 사회 남성 청년의 평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 세대가 겪는 차별과 계급 격차에는 민감하지만, 청년이라는 단어 속에 여성을 넣어 본 적이 없는 남자들. 젊은 남성이 살해당한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에 공분하여 살인자의 신분을 알아야겠다며 모니터 뒤에서 가진 위력을 모두 발휘하지만, 전 남편에 의해 여성이 살해된 강서구 주차장 살인 사건에는 결코 그만큼 분노하지 않는 남자들. 디지털 성폭력 불법촬영물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마음과 그 촬영물을 소비하는 게 괜찮다는 생각 사이는 그리 멀지 않다.

양진호 회장은 저지른 불법에 대해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폭력과 엽기 행각, 속속 드러나고 있는 여타 폭력 혐의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웹하드 서버를 통해서 불법 영상이 유통되는 것을 단순히 조장하고 방조한 것뿐만 아니라 실제 유통에도 개입해 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마땅한 법적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 불법 촬영물을 방치하는 웹하드 업체와 이를 걸러주는 필터링 업체, 그리고 불법 영상을 삭제해 주는 디지털 장의사까지 유착했다는 의혹인 웹하드 카르텔과 관련한 수사도 신속 정확히 이루어져야만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권미혁 의원은 지난 10월, 웹하드 카르텔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불법 촬영물 유통은 계속되어 왔고 도리어 확대ㆍ재생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 역시 양진호 회장이 성폭력 피해자의 눈물로 지어진 제국에 살았다는 식의 자극적인 묘사를 하기에 앞서, 웹하드 카르텔을 만든 시스템과 경찰의 수사 상황에 대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할 것이다.

나는 궁금하다. 지금 양진호 회장에게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저지른 어떤 일에 대해 얼만큼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오직 그가 저지른 폭력의 잔혹함과 권력에 취한 알량하고 천박한 자의식과 갑질 그 자체에만 화가 난다면 그건 위험신호다. 그의 모든 행각을 가능하게 한 기반인 부(富)의 대부분은 디지털 성폭력 불법 촬영물 유통, 유포한 데서 왔다. 그것을 기꺼이 구매한 이들이 준 돈이다. 그 불법 촬영물은 누가 구매했는가? 양진호 회장이 음란물 유포 혐의로 2차례 구속 및 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웹하드 업체가 굳건히 버텨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돈과 권력을 가진 이가 약한 자에게 가하는 폭력에 분노가 끓어오른다면, 그가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여성들을 통해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구조에 대해서 역시 화가 나야만 한다. 몇십 원, 몇백 원으로도 모자라 공짜 쿠폰으로 불법 촬영물을 소비해 온 이들이 양진호를 회장으로 만들었으며 그들 또한 이 모든 사태의 공범이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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