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협의 거쳐 자본시장 혁신과제 발표
“자본시장, 대출시장 이상으로 육성할 것”
내년부터 중소기업도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창업한 지 7년 이내의 기업만 크라우드펀딩이 허용되는데 대상 기업이 확 늘어나는 것이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금액도 기존 7억원에서 15억원으로 배 이상 늘어난다. 기업이 소액공모로 조달할 수 있는 금액도 현행 10억원 이하에서 100억원 이하로 대폭 늘어난다.
금융위원회는 31일 당정 협의를 거쳐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 혁신과제를 발표했다.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혁신기업이 적기에 충분한 자금을 공급받아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기업은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자본시장과 대출시장(은행)에서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금융시장이 정책보증과 은행 중심으로 발전해 자본시장의 역할은 상당히 미약하다. 사실상 한국거래소 상장기업이 아닌 이상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해 기준 국내 회사채 발행잔액은 235조4,000억원으로 국내 기업대출 잔액 814조4,000억원의 29%에 불과하다. 미국은 회사채 발행규모가 대출금의 2.3배 이상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자본시장을 대출시장과 경쟁이 가능한 수준 이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정부는 이를 위해 4대 추진전략과 이를 시행하기 위해 12개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질한다. 우선 사모 발행 범위가 확대된다. 기업들이 사모를 통해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모 투자란 소수의 일반투자자 또는 전문투자자만을 대상으로 회사 지분을 넘겨 자본을 조달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금은 기업이 일반투자자 50인 이상에게 청약권유를 하면 공모로 보고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생긴다. 앞으론 청약권유를 한 일반투자자 수와 관계 없이 실제 청약한 일반투자자가 50인 미만일 땐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기업의 사모 발행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다.
전문투자자만을 대상으로 한 사모발행 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광고 등을 활용한 공개 자금모집도 허용한다. 지금은 사모 발행 땐 공매 자금모집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공모 때만 가능하다.
크라우드펀딩 규제도 완화된다. 크라우드펀딩이란 인터넷플랫폼을 활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소액으로 모집하는 경우 감독당국의 심사 없이도 자금모집을 허용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지금은 창업 7년 이내 기업만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내년부턴 이 범위가 중소기업까지 확대된다. 자금 조달 가능금액도 기존 7억원 이하에서 15억원으로 확대된다.
소액공모 조달금액도 기존 10억원 이하에서 100억원 이하까지 확대된다. 소액공모란 일정규모 이하의 자금조달을 하는 경우 증권신고서 대신 간소화된 서류만을 감독당국에 제출하면 공개적 자금모집을 허용하는 제도다. 지금은 자금조달금액이 10억원 이하일 때만 간소한 절차만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데, 내년부턴 30억원 이하와 100억원 이하로 제도를 이원화해 이 제도를 운영하기로 했다. 기업으로선 선택의 폭이 훨씬 커지는 셈이다.
이밖에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쉽게 유동화할 수 있도록 신용평가를 받지 않은 초기 기업도 자산유동화를 허용하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담보신탁 유동화도 허용된다. 또 중소기업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증권사 설립 문턱도 낮춰주기로 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정책 효과를 빨리 체감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후속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12개 과제 중 5개 과제는 의견수렴을 거쳐 연내 제도개선방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크라우드펀딩 대책, 소액공모 조달 대책 등은 내년 1분기 중 제도개선 방안을 확정해 발표한다. 이는 자본시장법을 고쳐야 하는 만큼 실제 도입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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