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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태!] 도시 살아도 시골 살아도... 먹이 부족에 삶이 팍팍한 소형 맹금류

입력
2018.11.03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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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새 황조롱이와 시골 새 붉은배새매의 동상이몽 

황조롱이가 날개를 펴고 힘차게 날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황조롱이가 날개를 펴고 힘차게 날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지난해 시청자의 공분을 샀던 참새 ‘새순이’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잘 따르고, 머리 위에 앉아 사람과 교감해 ‘새순이’라는 별명이 붙은 참새가 한 시사교양프로그램 방송촬영 도중 황조롱이에 잡아 먹히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한 겁니다. 황조롱이는 참새를 잡아채 빌딩 난간으로 데려가서 잡아 먹어 버렸습니다. 결국 정규 프로그램으로 방송되진 못했고 촬영 뒷이야기 형태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주민들은 망연자실, 담당피디도 어안이 벙벙해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다고 황조롱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삭막한 도심 속에서 먹이를 구하기란 쉽지 않은 황조롱이 입장에서는 사냥할 타이밍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도심에서 살아가는 황조롱이는 먹이뿐 아니라 가족을 꾸리기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에도 많은 역경이 따릅니다.

사실 황조롱이는 아파트 난간의 화분에서 몰래 번식하다가 종종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하는 나름 유명한 맹금류입니다. 도시라는 삭막한 지역에 맹금류인 황조롱이가 살고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동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도시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합니다.

황조롱이가 대전 엑스포공원 한빛탑 외부에 지은 둥지. 앞서 까치가 지은 둥지를 황조롱이가 차지한 후 고쳐 사용했다. 국립생태원 제공
황조롱이가 대전 엑스포공원 한빛탑 외부에 지은 둥지. 앞서 까치가 지은 둥지를 황조롱이가 차지한 후 고쳐 사용했다. 국립생태원 제공

 ◇황조롱이의 도시살이 

황조롱이는 천연기념물 제323-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텃새입니다. 몸길이는 수컷 33㎝, 암컷 38.5㎝로 일반적으로 암컷이 조금 더 큰 소형 맹금류이지요. 동그란 눈에 노란색 발, 회색 꼬리가 특징인데요. 꼬리 끝에 검은색의 넓은 띠가 있어 맹금류 중에서는 비교적 화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요 서식지는 숲, 개활지, 농경지, 도시 등으로 다양하며, 곤충류부터 설치류, 파충류까지 잡아먹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럽, 아프리카,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 분포합니다. 번식시기는 4월 초순으로 4~6개의 알을 낳고 대략 60일 후 새끼들은 부모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공중에서 먹이를 발견하면 꼬리 깃을 펼치고 날개를 팔랑거리며 정지비행을 하는 개인기도 있어 비교적 도시환경에 적응력이 뛰어나고 다른 맹금류의 비해 그 수와 관찰빈도도 높습니다.

황조롱이가 다른 맹금류와 달리 도시에서 살아가는 개체가 많은 것은 아마도 구조물 이용능력이 뛰어난데다 이들이 기회주의적 포식자(opportunistic hunter)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황조롱이는 둥지를 스스로 짓는 것보다 기존에 만들어진 인공구조물이나 다른 종의 둥지를 선호합니다. 국내 연구결과에서도 인위적인 구조물에서의 번식성공률이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바람이나 강우와 같은 외부환경으로부터 번식둥지의 훼손이 적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소형 맹금류 황조롱이의 비행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소형 맹금류 황조롱이의 비행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특히 까치의 둥지는 황조롱이에게는 최고의 둥지인데요. 겨울이 끝나갈 무렵 탐조를 나가면 황조롱이가 수마리의 까치들과 둥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만 보고 있으면 황조롱이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까치들과 싸우고 있어 마치 까치가 황조롱이의 둥지를 빼앗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둥지는 지난해 까치가 정성스레 나뭇가지를 물어다 만들어 번식을 한 둥지일 가능성이 큽니다. 황조롱이는 까치보다 조금 일찍 번식을 시작하기 때문에 미리 점찍어 놓은 까치의 둥지를 먼저 차지하려고 하는 건데요, 사냥술이 뛰어나 무리행동을 하지 않는 맹금류의 특성상 둥지에 암컷을 놔두고 수컷 혼자 여러 마리의 까치와 상대를 합니다. 반면 까치는 동종이 만든 둥지를 뺏기지 않기 위해 집단적으로 대응을 하면서 벌어지는 장면입니다. 사실은 자신이 까치의 둥지를 빼앗는 것이지만 “끽끽끽끽~” 고성을 지르며 홀로 까치들을 상대하는 걸 보면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마치 세입자 황조롱이 부부가 집주인 까치에게 핀잔을 듣는 것처럼 보입니다.

메뚜기를 잡고 있는 황조롱이. 국립생태원 제공
메뚜기를 잡고 있는 황조롱이. 국립생태원 제공

황조롱이의 역경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거대한 빌딩 숲을 헤쳐나가며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옵니다. 빌딩의 창문은 황조롱이에게 잘 보이지 않고 창문에 비친 나무나 녹지의 모습을 보면 마치 숲으로 착각할 수도 있어 빠른 속도로 날다가 창문에 부딪히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먹이를 물어오는 것마저 힘들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도심 속에서 이들은 무엇을 먹으며 살아갈까요? 황조롱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기회주의적 포식자입니다. 사실 설치류를 좋아하지만 시골에 비해 좋아하는 설치류가 적기 때문에 가장 많이 섭취하는 것은 여름철 우리 귀를 시끄럽게 하는 매미입니다. 매미를 잡아 부리로 정성스레 날개를 떼고 새끼들에게 주면 서로 먹겠다고 목을 쭉 빼는 모습에 황조롱이 부모는 쉴 틈 없이 간담이 서늘했던 빌딩숲을 향해 다시금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전봇대 위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붉은배새매. 국립생태원 제공
전봇대 위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붉은배새매. 국립생태원 제공

 ◇붉은배새매의 시골살이 

붉은배새매는 황조롱이와 달리 도시에 서식하는 빈도가 매우 낮습니다. 주로 시골마을 입구 침엽수림 안쪽에서 접시 모양의 둥지가 보인다면 바로 붉은배새매의 것입니다. 붉은배새매의 몸길이는 수컷이 약 30㎝이고, 암컷은 대략 3㎝정도 큰 편입니다. 몸 윗면은 푸른회색, 가슴은 흐린 주황색, 아랫배는 흰색입니다. 어른 새의 수컷과 암컷은 눈 모양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수컷은 어두운 붉은색인 반면 암컷은 노란색 홍채가 뚜렷합니다. 주로 평지와 야산의 숲, 숲 주변의 논, 개활지 등에 서식하는데요. 농촌 인근의 낙엽활엽수와 침엽수림에서 보통 5월쯤 3~4개의 알을 낳고, 태어난 새끼는 50일 만에 둥지를 떠납니다. 단연 선호하는 먹이는 개구리인데요 이외에 작은 설치류와 조류, 곤충류를 잡아먹습니다.

세계적으로 중국,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반도 등지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월동하는 여름철새입니다. 붉은배새매는 이동시기인 4월쯤 중국 남부 또는 동남아시아에서 수천마리가 서남해안을 거쳐 우리나라를 찾아왔다가 번식을 마치고 9월쯤 돌아갑니다. 이 시기에 서남해안의 도서지방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수천마리의 붉은배새매를 비롯한 벌매, 새매 등 다양한 맹금류의 이동을 볼 수 있습니다.

붉은배새매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는 논 주변에 많이 보이는 청개구리들입니다. 때문에 황조롱이가 도심 속에서 사는 것과 달리 붉은배새매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도시외곽이나 논과 산림이 공존하는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살아가는 게 일반적입니다. 시골의 농로를 지나 갈 때면 버릇처럼 줄줄이 이어진 전봇대를 바라보곤 하는데요, 전봇대 위는 바로 붉은배새매가 개구리 사냥을 하기 위해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붉은배새매 한 마리가 전봇대에 가만히 앉아 맹금류라고 하기에는 귀여운 눈망울로 개구리를 노려보다가 곧 포기하고 다른 먹이를 찾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바로 여름철 농경지에서 많이 보이는 백로들 때문입니다. 백로가 가장 선호하는 먹이는 어류이지만 개구리, 올챙이 등도 좋아하기 때문에 가끔 이 붉은배새매가 노리는 먹이인 개구리나 올챙이도 살금살금 다가가 작살 같은 부리로 빠르게 잡아먹곤 합니다. 붉은배새매 입장에서 백로는 먹이가 겹치는 경쟁자일 뿐입니다.

전선 위에 앉아 있는 붉은배새매. 국립생태원 제공
전선 위에 앉아 있는 붉은배새매. 국립생태원 제공

황조롱이의 경우 도시나 농촌에 서식해도 개구리보다는 설치류를 선호하고 다양한 장소에서 먹이를 구하기 때문에 백로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면 붉은배새매는 개구리를 선호하는데다 번식기 세력권이 농촌으로 협소하고 둥지 주변 농경지에서 먹이를 찾기 때문에 백로들이 떼로 몰려와 개구리를 잡아가 버리면 전봇대에서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게 됩니다. 붉은배새매 어미는 둥지에서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새끼들을 생각하면 구경만 할 수 없는 탓에 다른 먹이도 찾아보는데요. 새끼들이 왕성하게 성장하는 번식기 중반에는 개구리 대신 대형 곤충류인 매미를 많이 물어다 줍니다. 과거 연구자료를 보면 붉은배새매의 주먹이원은 개구리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나 최근에는 곤충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농경지의 생물다양성이 변화했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국내 농업방식의 패러다임이 조금씩 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농약사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국 중 상위그룹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농약이 물 속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붉은배새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농경지의 생물 다양성이 변화함에 따라 새끼들의 왕성한 식욕을 채워주어야 하는 어미 붉은배새매의 등골은 휘어만 갑니다.

수리부엉이 둥지를 노리고 있는 황조롱이. 국립생태원 제공
수리부엉이 둥지를 노리고 있는 황조롱이. 국립생태원 제공

 ◇상위 포식자로서 소형맹금류의 중요성 

황조롱이는 나름의 개인기와 ‘저렴한’ 입맛 그리고 빠른 적응력으로 다양한 서식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도시에서의 삶이 가능합니다. 반면 붉은배새매는 손수 정성스레 만든 둥지에 농경지에서 먹이를 구하기 때문에 도시살이는 어려울 겁니다.

황조롱이나 붉은배새매 모두 각각 천연기념물,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긴 하지만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맹금류입니다. 그래서 (맹금류 중에서) 개체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들을 법적 제도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도 듣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대답은 ‘그나마 법적보호종이라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최상위 포식자인 이들은 약간의 환경변화에도 먹이부족현상이 일어납니다. 실제로 굶주리다 탈진해 야생동물보호센터 등에서 보호되고 있는 개체가 보호장이 모자랄 정도로 많습니다. 새들은 먹이를 먹지 못해 탈진하면 가슴근육이 거의 만져지지 않는데요, 하늘을 날기 때문에 다른 생물종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붉은배새매 암컷. 사진으로 잘 확인되진 않지만 수컷은 눈이 어두운 붉은 색이지만 암컷은 노란색 홍채가 뚜렷한 게 특징이다. 국립생태원 제공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붉은배새매 암컷. 사진으로 잘 확인되진 않지만 수컷은 눈이 어두운 붉은 색이지만 암컷은 노란색 홍채가 뚜렷한 게 특징이다. 국립생태원 제공

황조롱이나 붉은배새매 모두 곤충보다는 각각 설치류나 개구리를 선호할 겁니다. 하지만 이들의 먹이는 매년 감소하기 때문에 대체 먹이로 매미와 같은 대형 곤충류를 선택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선택적 먹이 변화는 결과적으로 이들의 개체 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쥐나 개구리와 매미는 영양분도 다르지만 새에게 비행 횟수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쥐나 개구리 한 마리만큼 매미를 먹으려면 아무래도 더 많이 비행할 수밖에 없지요.

시골 쥐가 서울 쥐를 만나러 서울에 갔다가 화려한 삶과 먹이보다 마음이 편안한 시골이 좋다고 금방 내려온 것처럼 시골에 사는 붉은배새매는 서울에 사는 황조롱이가 결코 부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도시에 사는 황조롱이 역시 서식처가 이렇게 빌딩숲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이보다 좋은 먹이를 먹으며 편안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황조롱이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나긴 힘들기 때문에 정착해 살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도시에서 적응한 황조롱이일지라도 갑작스런 생태계 변화는 그들의 삶을 핍박하게 됩니다. 혹시라도 결국 도시에서 적응을 못하게 된다면 앞으로 ‘빌딩 난간에서 번식한 황조롱이’, ‘아파트 화분에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번식하다‘ 등의 뉴스조차도 기억 속에만 남을 것입니다. 이보다 도시 적응력이 떨어지는 붉은배새매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진선덕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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